[기자수첩] 한국에 100년 장수 기업이 적은 이유
2024-03-22 김민주 기자
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우리나라엔 왜 창립 100주년을 넘긴 기업들이 손에 꼽힐까.
제약업계에선 126살이 된 동화약품이 유일하다. 이 외엔 91주년을 맞이한 동아제약, 97주년의 유한양행이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식음료업계에선 하이트진로와 삼양그룹이 올해로 99주년을 맞이했다. 전방위 산업계를 통틀어도 100년 이상의 연혁을 지닌 기업은 10여곳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이 2011년 발간한 ‘일본의 기업승계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수기업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最古)의 장수기업도 보유하고 있다. 창업 20년 이상 장수기업을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일본이 3113개(43.2%)로 압도적으로 많다. 독일에는 무려 1553개(21.7%)의 200년 이상의 장수 기업이 존재한다. 장수기업 존속의 이면에는 가족경영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 정부는 가족경영은 부의 대물림이 아닌 장수기업이 많아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10년 장기간 고용 유지 등 일정 조건만 이행되면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도록 상속세법을 개정한 바 있다. 일본 정부 및 기업 역시 원활한 기업승계를 통한 고용확보와 경제 활력 유지를 위해 기업승계 관련 종합대책을 강구한다. 최근 ‘100년 기업’이란 주제로 기획 기사를 진행하며, 다양한 해외 사례와 국내 현행 제도들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취재를 거듭할수록 상속·증여세 개혁은 기업경쟁력 제고와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단 생각이 불어났다. 앞서 언급한 선진 사례들과 달리,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의 약 2배에 달하며, 가업승계 요건이 까다로워 장수가족기업 탄생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밖에도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현행 상속세 부과방식 및 세율 체계의 부작용은 다양한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기업승계는 원활한 세대이전을 통해 일자리 창출‧유지, 기술‧노하우의 계승 및 발전, 영속기업으로의 성장과 장수기업의 토대를 육성함으로써 경제 전반의 활력과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일본은 전통기술을 시대 변화에 따라 계승‧발전시킴으로써 고객의 수요에 부응하는 독보적 기술로 승화한다. 일례로, 붓펜, 융설제, 자동발광표지 등은 모두 먹 장인의 전통 제조 기술(카본기술)을 고객의 수요에 맞게 계승 및 발전시켜 현대적 기술로 승화시킨 제품들이다. 우리나라의 기업 승계에 대한 구시대적 인식 역시 장수 기업의 탄생을 가로 막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유독 한국에선 승계 작업을 부정적 방향의 ‘부의 대물림’으로 폄훼하는 기조가 만연하다. 전문가들은 기업 승계는 단순히 개인자산을 후대가 이어받는 것이 아닌, 경제주체의 사회적 역할 확장이 내포됨을 이해해야한다고 꼬집는다. 장수기업 육성에 따른 경제적 이득과 N차 창출 가치 등을 사회가 공감해야할 때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제도의 개선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상속세제도 개편이 시급하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