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밀당 잘하는 유능한 대통령은 어디에

2024-03-23     염재인 기자
정경부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물컵에 절반 이상이 찼다. 일본의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가 먼저 물잔의 반을 채웠다. 이제는 일본이 나머지 반을 채워 화답해야 할 때"

박진 외교부 장관과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각각 지난 6일, 15일에 언급한 말이다. 특히 유 수석대변인의 말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방문하기 하루 전에 나온 것이다.  정부가 가장 먼저 채운 물잔은 바로 '제3자 변제' 방식을 골자로 한 '일본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이다. 피해자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해 국민 여론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컸지만, 정부는 "대승적 결단"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한·일 관계 개선에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한·일 정상회담 성적표는 초라했다. 정부는 '셔틀 외교' 및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복원 등을 내세우며 한·일 관계 성과를 자화자찬했지만, 기대했던 일본 호응은 없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오히려 일본은 회담에서 '절반의 물잔'을 채우기는커녕 독도 영유권 문제와 위안부 합의 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를 내주니 열을 달라는 형국이다.  연애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밀당(밀고 당기기)'이다. 연인이 되기 전이나 이후 상대방에 대한 심리전을 표현한 말이다. 연애도 사람 간 일인 만큼 서로 사랑해서 모든 것을 바치면 순애보가 되지만, 상대방은 떡 줄 생각도 없는데 퍼주기만 하면 소위 호구가 되는 것이다.  연인 관계에서도 기싸움이 벌어지는데 외교 관계는 어떨까. 외교 무대에서는 내가 1을 준다고 상대방이 1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1+@를 뺏어오기 위한 정글이다. 정부는 먼저 손을 내밀기 전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파악했어야 했다. 일본은 이미 3년여 전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로 뒤통수를 친 전례가 있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최근 윤 대통령의 '일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유치' 발언을 비춰볼 때 윤 정부는 아직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밀당 잘하는 유능한 대통령'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