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긴축 속도조절에도 셈법 분주한 한은...4월 인상에 무게
물가·금융불안 등 고려 금리 동결 가능성 일부 제기 한미 금리격차 역대 최대..."추가인상 가능성 더 커"
2024-03-23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23일 새벽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피하고 0.25%P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다음달 예고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행보에도 이목이 쏠린다.
일각에선 연준이 속도조절에 나선 만큼 한은의 통화정책 운영에도 다소 여유가 생겼다는 평가도 있지만, 한미 간 금리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진 만큼 한은도 금리 인상에 나설거란 관측도 많다. 아울러 물가나 환율, 외국인 자금 유출 상황에 따라 한 차례 추가 인상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예상대로 5월 한 차례 0.25%포인트(p) 더 오르면 두 나라의 금리 격차는 사상 최대 수준인 1.75%까지 벌어지고, 원/달러 환율과 수입 물가 상승 압력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연준은 21일∼22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예상대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4.50∼4.75%에서 4.75∼5.00%로 0.25%포인트 올렸다. 앞서 지난 7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만약 전체적 지표상 더 빠른 긴축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뒤 한때 빅 스텝 예상 확률이 80%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이후 실리콘밸리은행(SVB)·시그니처은행 등의 잇따른 파산 여파로 결국 보폭이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줄었다. 이날 공개된 새 점도표(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수준 전망을 표시한 도표)의 올해 금리 전망치도 5.00~5.25%(중간값 5.1%) 수준으로, 지난해 12월 점도표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었다. 현재 기준금리(4.75∼5.00%)를 고려할 때 연내 한 차례 정도 베이비스텝만 남아 있다는 뜻이다. 연준이 당초 빅 스텝 우려와 달리 2월에 이어 이달에도 베이비스텝만 밟고 '더 높고 빠른' 인상도 예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은으로서는 미국 긴축 속도와 관련된 부담을 다소 덜게 됐다. 따라서 4월에도 2월과 마찬가지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3.50%)에서 한 번 더 동결하고 물가나 경기 상황을 지켜볼 여유가 생겼다. 최근 경제 지표들만 보자면, 수출 감소로 1월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45억2천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경기 하강 신호가 뚜렷한 반면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개월 만에 4%대(4.8%)로 떨어져 한은의 연속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구나 한은 역시 연준과 마찬가지로 1년 반 넘게 이어온 금리 인상 행진의 부작용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아직 국내 은행의 연체율이나 여러 건전성, 복원력 지표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지만, 계속 금리 인상으로 압박하면 취약한 저축은행이나 카드사(여신전문금융회사) 등에서부터 유동성 부족이 나타나 은행 등 전체 금융기관을 흔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폭이 줄었더라도, 미국 연준의 통화 긴축 기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이날 FOMC 회의 직후 "올해 중 금리 인하를 전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며 "우리가 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준의 베이비스텝으로 한국(3.50%)과 미국(4.75∼5.00%)의 기준금리 격차는 1.25∼1.50%포인트로 벌어졌다. 1.50%포인트는 2000년 10월 1.50%포인트 이후 가장 큰 금리 역전 폭이다. 만약 4월 한은이 다시 동결을 결정하고, 연준은 점도표상 올해 전망치(5.00~5.25%)에 따라 5월 베이비 스텝만 밟아도, 미국(5.00∼5.25%)의 기준금리는 한국(3.50%)보다 1.75%포인트나 높아지게 된다. 한미 금리 역전 폭으로서는 새 최대 기록이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여러 차례 "한미 금리차에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지만 커지는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과 외국인 자금 유출 압력을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특히 환율이 금리 격차 등의 영향으로 더 뛸 경우, 한은도 추가 금리 인상을 심각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원화가 절하(가치 하락)될수록 같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은 높아지는 만큼, 힘겹게 정점을 지난 물가에 다시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앞서 지난 2월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6명 금통위원 가운데 5명은 "3.75% 기준금리 가능성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