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심한 포퓰리즘 '예금 전액 보호'
2024-03-26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은행 곳간에 현금을 맡겨둔 자산가들 사이에 이른바 '예금 쪼개기'가 한창이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유럽의 크레디트스위스(CS)마저 매각됐다는 살 떨리는 뉴스를 보고 나서다.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은행 예금자보호 한도(5000만원)를 넘긴 금액들을 다른 은행들로 쪼개 옮기는 풍경이 벌이지고 있는 거다. 내 아내도 불안한 듯 방도를 묻는다.(딴 주머니가 없는 이상 쪼갤 현금 자산도 별로 없을 터인데). 답을 해줬다. 우리가 돈 맡긴 그 은행 정도는 안전하다고. '금융시스템 위기'가 연일 뉴스를 도배하면서 믿을만한 은행에 돈을 맡긴 예금주들까지 노심초사다. 최근 보름 새 벌어진 국제 금융계의 혼란 때문이다. 무엇보다 뱅크런으로 인한 예금 인출이 순식간에 이뤄진 소식들이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세상 돈이 다 몰린다는, 167년 역사의 스위스 은행(CS)이 몰락하리라고 누가 예상했나 묻는다면 그럴만도 하다. '뱅크런'은 저축은행 사태를 떠올리는 말이기도 하다. 2011년부터 2년간 솔로몬저축은행 등 20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때 이슈가 됐던 화두다. 그리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는데 다시 뱅크런을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내 돈을 맡긴 은행이 문제가 없는지 살펴하는 시대다. 이런 와중에 '예금자보호 한도'가 이슈가 되는 분위기다. 발단은 미국 정부 인사의 입에서 시작됐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놀랍게도 예금자보호 한도(25만달러)를 넘어선 예금 전액 지급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우리나라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바로 호들갑을 떨었다. 금융위원장은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게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한술 더 떠 일부 국회의원은 현행 5000만원인 예금자보호 한도를 1억원까지 늘리고, 필요에 따라 미국처럼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 발의에 들어갔다. 예금자보호 한도를 늘리는 방안은 고민해볼 여지가 있는 사안이다. 예금 규모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졌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보호 한도 자체가 작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예금 전액 보호'라는 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법과 제도, 시장의 근간을 흔들수도 있다. 전액 보장은 사실상 정부가 피해를 보증해준다는 거다. 엄청난 부작용이 뒤따를 조치다. 특히 예금자들에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다. 다들 금융사의 부실 여부를 살피지도 않고 이자를 더 챙겨주는 곳에만 돈다발을 들고 몰려들 게 뻔하다. 무엇보다 은행에 현행 예금자보호 한도 5000만원이 넘는 예금을 보유한 고객은 극히 소수다. 최근까지도 혈세를 들여 빚탕감을 해준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번엔 혈세를 들여 특정 계층의 돈을 메꿔준다는 논란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조상의 묘자리도 판다는 여당 한 최고위원의 최근 발언을 곱씹어보면, 가능한 발상이긴 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뒷감당이 가능한 정책을 내놓는게 맞다. 은행에 맡긴 예금주들의 돈도 무사해야하지만 나랏돈도 제대로 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