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못 알아듣나 안 듣나
2024-03-27 조준영 기자
사회생활 시작부터 지금까지 듣는 말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냐. 안 듣냐.” 대사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뜻은 하나다. “내 말 잘 들어.” 못 알아듣기도 했다. 안 듣기도 했다. 그래도 겉으로는 듣는 시늉을 해야 사회생활이 된다. 우리말 어렵다고 많이 말한다. 공감한다. 알아듣기 자체가 매우 어렵다. 더욱이 알아들은 다음에도 산 넘어 산이다. “들을까. 말까.” 선택이 필요하다.
'이해상충', 해마다 3월 주주총회 철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다. 기업가치에 반하거나 주주이익에 어긋날 때 쓴다. 주총이 올해도 3월 셋째, 넷째 주 금요일에 몰렸다. 해마다 ‘슈퍼주총데이’라고 부르는 이 두 날에 수백, 수천 개 상장사가 한꺼번에 주총을 연다. 물론 주주이익을 훼손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주총일을 분산하라고 해왔다. 그래야 좀 더 많은 주주가 주총에 참여할 수 있다. 말이 어려워서 못 알아듣는 걸까. 안 듣는 걸까.
답은 뻔하다. 들을 생각이 있는 사람을 회사에 앉히면 된다. 국민연금이나 의결권자문기관이 주식시장에서 주주가치를 높이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지 좀 됐다. 적극적으로 상장사에 요구하기도 한다. 임원 선임에 반대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경제개혁연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과거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졌는데도 선임을 강행한 등기임원은 2월 말 현재 35개 대기업집단 98개 계열사, 163명에 달한다. 3년 전 90계 계열사, 142명보다 8개 계열사, 21명이 늘었다. 금융사도 다르지 않다. 국민연금 반대를 무시하고 일해온 등기임원이 30명에 이른다.
대기업이나 금융사는 반대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대하는 이유를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이나 의결권자문기관이 임원 선임에 반대표를 던진 이유를 보면 위법행위(혐의)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이 대부분이다. 너무 명백한 이유다. 이런 부당행위에 대한 감시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외이사나 감사위원도 문제가 됐다.
‘사외이사 3명 가운데 2명꼴로 연임’, 올해도 주총을 앞두고 이런 제목을 단 기사를 꽤 보았다. 상장사 임원 선임에는 결격사유가 문제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들끓어도 아랑곳없다. 그대로 선임할 뿐 아니라 2연임, 3연임도 한다. 대학에 몸담았다가 국회의원이 된 A씨는 이런 말을 했다. “거수기 사외이사라는 말은 잘못됐어요. 사외이사가 버티고 있으니 반대할 만한 안건도 올라오지 않는 거죠.” 정말 그럴까. 알아듣고도 안 들으면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