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외압의 크기만큼 KT는 썩는다

2024-03-28     김영민 기자
김영민

매일일보 = 김영민 기자  |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에 이어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도 결국 외압에 무릎을 꿇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KT가 민영화된지 20년이 넘은 명백한 민간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치권과 국민연금의 압박으로 CEO를 뽑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구현모 현 대표는 연임을 시도했다가 포기했고, 최종 후보인 윤경림 사장은 주총을 나흘 앞두고 사퇴했다. 장기간 끌어온 KT의 차기 CEO 선임 절차가 결국 파국을 치닫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주주총회를 통과해 CEO가 되더라도 외압을 견디기 힘들다고 판단해 자진 사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는 31일 열릴 예정인 KT 주총에서 차기 CEO를 선임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당분간 CEO 없이 경영공백이 불가피하고 비상경영체제가 가동될 수밖에 없다. KT는 업계 맏형이자 재계 순위 12위에 임직원만 2만명이 넘는 국가대표 통신사다. 특히 KT는 통신사업자를 넘어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CEO의 장기부재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KT 내부에서는 "올해 농사는 망쳤다"는 말까지 나온다. 윤경림 사장은 KT의 변화를 이끌 적임자로 평가되는 인물이었다.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블록체인, 커넥티드카 등 KT에서 미래 신업을 맡아왔고, 현대자동차, CJ그룹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전략통이다. KT 이사회도 윤 사장이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KT의 미래를 설계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판단해 최종 후보로 낙점했다. 심지어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윤 사장을 차기 CEO로 선임하는 것에 대해 찬성안을 권고했고, 국내 자문사인 한국ESG평가원 등도 찬성 의견을 냈다. 그런 그에게 정치권은 구현모 대표의 아바타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거세게 압박했다. 윤 사장은 "더 버티면 KT가 어려워질 것 같다"는 뜻을 전하며 결국 사퇴를 선택했다. 구현모 대표가 KT CEO가 될 때만해도 KT의 흑역사가 끝나는가 했다. 정권이 바뀌자 과거의 악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있다. KT CEO 선임에 정치권 입김이 작용하는 부끄러는 과거가 다시 현실이 될까 우려된다. 정치권에서는 누가 KT CEO로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들이 물밑에서 밀고 있는 인사들 중 KT의 변화를 이끌어갈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인물이 있기나 할까. 여권이 주장하는 구현모-윤경림 '이권 카르텔'보다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는 시나리오가 KT를 더 어지럽히고 혼란에 빠뜨릴 것이 분명하다.  KT CEO는 조직을 안정화하고 변화의 시기를 잘 이끌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통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찾는 KT의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전략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KT 주주들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민간기업을 통째로 흔드는 외압을 멈추고 KT의 안정과 성장을 도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