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정부가 지난 11월 6일 인공지능(AI)을 악용한 ‘딥페이크(Deepfake │ 불법 합성물)’ 성범죄 대응 강화방안을 내놨다. 지난 8월 대학가는 물론이고 초·중·고에서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만연해 있다는 충격적 사실이 드러난 뒤 나온 범정부 대책이라 뒤늦은 감(感)이 없지 않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동안 사건이 터질 때만 반짝 경계심을 갖는 일이 반복되고 일과성 땜질식 미봉책으로 일관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앞서 ‘엔(N)번방 사건’ 이후에도 정부 대책이 쏟아졌지만, 디지털 성범죄가 더 교묘한 수법으로 지능화해 활개 쳤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딥페이크(Deepfake)란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기존 사진‧영상을 다른 사진‧영상에 겹쳐서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기술을 말하며, 딥페이크 성범죄란 사람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자 의사에 반하여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하는 형태로 합성하거나 해당 합성물을 유포하는 행위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의 적용을 받는다. 또 다른 디지털 성범죄인 ‘사이버플래싱(Cyber flashing │ 자신의 나체 사진이나 영상 등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까지 확산 중이라 더욱 우려스럽다. ‘사이버플래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아무에게나 손쉽게 콘텐츠를 전송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과거 길거리에서 벌어지던 ‘바바리맨’들의 범죄가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딥페이크’가 아는 사람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지인(知人) 능욕(凌辱)’이라면 ‘사이버플래싱’은 모르는 사람에 대한‘묻지 마 폭력’에 가깝다. 흉기를 소지한 성범죄자가 온라인을 휘젓고 다니는 셈인데 어린이 청소년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심히 크다. 이번 성범죄 대응 강화방안은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에만 한정했던 위장 수사를 성인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검거 전이라도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하며, 텔레그램 등 국내외 플랫폼 사업자들도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물 유통을 방치(置于)하면 과징금을 내야 한다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 골자다.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트렸던 디지털 성범죄 ‘엔(N)번 사건’이 터진 지도 무려 5년이나 흘러갔는데 이제야 수사제도와 기법을 고치겠다니 뒷북대응이라는 비난과 함께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感)이 없지 않지만 늦어진 만큼 신속한 속도감과 강력한 실행력으로 국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총력을 경주해야만 할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11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을 위해 ▷강력하고 실효적인 처벌, ▷플랫폼 책임성 제고, ▷신속한 피해자 보호, ▷맞춤형 예방 교육·홍보 등 4대 분야 10개 과제를 역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딥페이크 성범죄가 주로 이뤄지는 텔레그램 등 국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성(性)착취물을 차단하는 ‘선 삭제 후 심의’도 추진한다. 아울러 정부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제작·유통이 심각한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예방 교육을 더 늘리고 홍보를 강화한다. 2021년 통계 작성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리, 피해자 지원 건수는 4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하였고, 특히 피의자·피해자 중 10대 비중이 높은 상황(피의자 10대 비중 73.6%)이며, 범죄라는 인식도 부족하다. 지난달 중순까지 올해 검거된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474명 가운데 80%가 10대 청소년이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 대상도 유명인뿐 아니라 중·고교, 대학, 군 등 전방위로 퍼졌다. 하지만 딥페이크 영상 범죄가 디지털 공간에서 익명성을 무기로 벌어지다 보니 수사는 매번 헛발질에 그치기 일쑤였다. 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만큼 온갖 신종 범죄 수법이 기승을 부릴 게 불을 보듯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인다. 무엇보다 범죄영상물의 온상인 텔레그램 등 플랫폼 규제를 강화한 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 등 유통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시정명령과 과징금 및 제재를 받게 된다. 진작에 서둘렀어야 할 일이다. 피해자가 삭제 요청을 하는 경우 24시간 내 먼저 차단하고 그 결과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방안도 반길 일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접수된 불법 촬영물 삭제 요청 건수 94만 건 가운데 27.69%인 26만 건 이상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 사회는 냉정하게 뒤돌아봐야만 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수백만 원씩 돈을 들여 사설 업체를 통해 지우는 일까지 벌어졌다니 당국은 국가의 책무가 무엇인지 통렬히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