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 규제 철회로 韓중소제조업체 보호 수단 사라져
歐美정치권, 자국 산업 보호 위해 '일치단결'… 韓국회 본받아야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산업계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주52시간 근무제 등 입법 과제들이 정치적 논쟁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결국 22대 국회까지 떠밀렸다. 업계는 관련 법안의 시급한 개선을 촉구하며 정치권의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
12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중처법과 주52시간 근무제가 정치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이번 국회에서도 개선되지 못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하며 중처법의 유예 제안을 거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중소기업들이 법안에 대응할 준비가 부족하다는 통계를 근거로 민주당의 입장을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처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달라는 내용의 경영계 건의서를 오늘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경총은 건의서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게 지났지만 뚜렷한 산재 감소 효과가 확인되지 않고, 불명확한 규정으로 인한 현장 혼란과 경영활동 위축이 심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류기정 경총 총괄전무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당시부터 위헌성 문제가 지속 제기돼 현재 헌법소원 청구까지 진행됐다"며 "사업장 우려 해소와 중소·영세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정부가 시행령부터라도 조속히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당의 책임 공방 속에서 업계는 정치권의 무관심이 노동계의 반발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미 여러 차례 50인 미만 사업장들이 중처법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통계를 발표했지만, 정치권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상속세법 개정에 대해서는 여야가 이례적으로 의견을 모으면서 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민의힘은 상속세 전반을 손보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민주당의 동참을 촉구했지만, 민주당은 중산층을 위한 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법안 통과 과정에서 갈등이 예상된다.
최근 해외직구 규제 문제에 대해서도 업계는 정부의 대응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정부는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어린이 제품 등 80개 품목의 해외직구를 금지했지만, 여론의 반발로 사흘 만에 철회했다. 일부에서는 해외직구 규제 강화가 국내 중소업체의 역차별을 해소할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해당 법안의 취지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며, 개선 여지도 없이 철회돼서 아쉽다는 의견이 나왔다. 직구 규제 강화는 국내 중소 업체가 저렴한 중국산으로부터 받는 역차별을 해소하겠단 목적도 담겨있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높은 인건비와 안전성 인증 과정을 거쳐 가격대가 높은 국내 제품은 외면 받게 된다. 무분별한 직구 허용으로 국내사가 중국산과의 경쟁에서 도태되면 한국 제조업의 중추가 파괴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사태에 정치계의 책임이 크다고 토로한다. D출판사 관계자는 “제도의 긍정적인 모습은 보지 않고, 무조건 비판부터 시작한 정치권이 문제다. 야당은 그렇다치고, 평소 중소기업계를 살리겠다고 큰소리 치던 여당의 반대는 이해 안된다. 웬일로 여야의 쿵짝이 맞나 싶었는데, 결국 둘 다 국내 중소업체의 고충은 쳐다보지도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외사의 시장 잠식을 우려해, 초법적 법안까지 마다하지 않는 미국·유럽 정치권을 본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프랑스 의회는 국내의 해외직구 규제 조치와 유사한 '패스트패션 제한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사실상 테무와 쉬인을 겨냥한 법안으로, 패스트패션 의류에 대한 환경부담금 부과와 광고 금지 등이다. 프랑스 정치권이 환경 보호와 동시에, 저가·대량 생산으로 무장한 중국 의류 기업으로부터 프랑스 산업계를 보호하겠단 취지에 동의한 것이다.
한편, 최근 미국 내 중국 바이오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미국 정치권은 적대국가의 현지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생물보안법’을 올해 내 통과시킬 계획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상·하원 소속의 여야 의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법안에 동의했단 점이다. 올해 1월 미국 하원에 제출된 생물보안법안은 하원 상임위인 감독·책임위원회에서 찬성 40표, 반대 1표를 받았고, 지난 3월 6일 상원 상임위에서도 찬성 11표, 반대 1표를 받았다.
국내 S바이오사 미국 현지 직원은 “시장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선 보기드문 초법적 법안이지만, 해외 기업의 시장 잠식을 더 큰 우려로 본 것”이라며 “미국 정치인들은 평소에 박터지게 싸우다가도, 자국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선 일치단결한다. 한국 정치인도 국내 산업 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