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우리 경제가 경기 침체의 문턱에 들어선 가운데 믿었던 수출마저 흔들리면서 지난 2/4분기 역성장에 이어 3/4분기에도 연속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24일 발표한 ‘2024년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1% 성장(전 년 동기 대비 1.5% 성장)에 그쳤다.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2분기(-0.2%)보다는 나아졌지만 지난 8월의 한국은행 예상치(0.5%)를 무려 0.4%포인트나 크게 밑돌았다. 그동안 성장을 견인해 오던 수출이 전 분기 대비 -0.4%나 뒷걸음을 친 탓이 컸다.
우리나라 수출이 2022년 이후 처음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특히 반도체 수출이 주춤한 가운데, 한국GM 파업, 전기차 수요 정체 등으로 자동차·배터리·화학제품 등의 수출이 전 분기보다 줄어들거나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주력 산업군이 모두 수출 부진을 보인 것이다. 이에 따라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수출 – 수입)’의 성장기여도는 -0.8%포인트를 기록했다. 수출 부진이 성장률을 거의 1%포인트 깎아내린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상저하고(上底下高)’를 주문처럼 되뇌어 대고 “수출·제조업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내수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라고 그토록 거듭거듭 강조해온 낙관론은 무색해짐을 넘어 민망할 지경이다. 이렇듯 경제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으로 부진을 면치 못함에 따라 정부의 연간 성장률 전망치 2.6%는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해졌고, 한국은행 전망치 2.4%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문제의 심각성은 올해 성장률만 걱정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앞으로도 수출 여건과 대외 경제 상황이 낙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달까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2개월 연속 증가해온 수출은 이달 들어서는 20일까지 2.9%나 줄었다. 반도체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반도체 수출 증가세는 급속히 둔화하고 있고 자동차, 철강·석유 제품, 선박 등 대부분의 수출 전략제품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의 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이후 무역 장벽이 더욱 높아질 수 있어 경제적 리스크는 더더욱 커지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데 한국의 경제 기초체력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은 2.0%에 그쳐 처음으로 미국에 역전당했다. 무엇보다도 경제 ‘기초체력(Fundamental)’과 같은 잠재성장률이 최근 5년 새 0.4%포인트나 급락해 2.0%까지 낮아졌다. 우리보다 2.5배 이상 잘사는 미국의 잠재성장률(2.1%)보다 낮아졌다. 이러한 경제 현실을 충격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앞으로 실제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적신호이기 때문이다.
국제 정세도 매우 불안하기 그지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의 파병, 중동의 전운, 미국의 대통령선거 결과 등은 언제든 한국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복병이 아닐 수 없다. 원·달러 환율도 1,390.5원을 넘어 1,400원에 육박하고 있다. 3/4분기 내수회복 속도도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0.5% 증가를 기록해 지난해부터 좀처럼 0%대 성장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의료대란으로 건강보험 급여비가 늘며 정부 소비는 0.6%나 증가했다. ‘중국발(發) 밀어내기’와 ‘전기차 캐즘(Chasm │ 대중화 직전 일시적인 수요 정체)’ 현상 등 산적한 악재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양상이다. 지난해 56조원, 올해 30조원의 세수 결손으로 재정 여력은 부족하고 가계 빚과 부동산 시장의 금융안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한국은행은 추가 금리 인하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상반기 말 기준 1,896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가계부채로 내수도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취약 자영업자’가 41만 명으로 전체 자영업자 차주의 13.1%를 차지하고, 2분기 말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10.15%를 기록했으며, 6개월 넘게 일자리를 찾고 있는 20·30세대 청년 백수가 9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일본의 제조업 르네상스와 달리 지난해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액이 634억 달러에 그칠 만큼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도 심각하다. 주식 투자자들의 ‘엑소더스(Exodus │ 대탈출)’도 봇물을 이루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 목도되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저출생·고령화, 온갖 규제의 난무 속에 혁신 부족 등 구조적 요인이 겹쳐있어 일시적으로 빚내서 돈만 푸는 대증적 요법으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다. 이런데도 저성장 탈출을 위한 구조개혁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상태만 지속하고 있다. 정부는 낙관론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말고 수출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비상한 각오로 서둘러 나서야 한다. 혁신 경제를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확대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등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는 정공법을 서둘러 강구하고,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Buy KOREA)’를 위한 거시경제의 기틀을 다지고 지속 가능한 건전재정 유지에도 만전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