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욕구 천부적 잠재된 욕구 언제든 발현
천만의 영화관객이 도래한 시대이다. 이 숨막히는 숫자 앞에서 문학은 잔뜩 움츠러질 수밖에 없다. 제작규모상의 엄청난 차이는 셈하지 말자. 영화 표 한 장이나 시집 또는 수필집 한 권 값은 엇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영화 천만 관객의 도래를 보면서 나는 문학에 대한 희망을 곁눈질해 보았다. 영화도 예술이요, 문학도 예술이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마다의 가슴속에는 예술적 욕구가 잠재되어 있음을 천만의 관객에서 본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영화는 편안하게 앉아서 시청각으로 즐기지만 문학의 경우는 읽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어 갈수록 독서인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처럼 천만을 꿈꾸는 바도 아니요,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수고스러움을 거론하는 자체가 어긋나 보인다. 예술적 욕구는 천부적이어서 계기가 주어지면 잠재된 욕구는 언제든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 길, 일간지를 펼쳤더니 “27년간 쉼 없이 일하고 남은 건 억대의 빚 뿐…”이라는 종합면의 기사가 공복에 신물을 흐르게 하였다. 동네책방의 애환을 실은 내용이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서점 두 서너 곳을 제외하면 소규모 동네책방을 찾아보기 힘들다.
골목문화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그들이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 밀려버린, 일종의 무명이 겪는 서러움이다.
작품집을 출간해 서점에 깔아도 300부도 안 팔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명작가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작품집을 서점에 배포하면 출판사는 당연히 그 작가에게 판매현황을 알려주어야 하고 작가 역시 반응을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알려서 씁쓸해 할 바에야 침묵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무명작가의 작품이라 해서 작품성이 회공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서글픈 현실 앞에서 왜 작가들은 무모하리 만치 작품집을 내려하는 걸까, 적지 않은 자비를 들여서 말이다. 요는 문학에 대한 순수성 때문이다.
삶의 일부처럼 문학을 사랑하고 피땀 흘려 창작한 작품을 모아 문학적 매듭을 지어간다는데 더 큰 가치를 두어서다. 자신의 작품집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면 그보다 영광스런 일이 또 있을까마는 베스트 셀러는 현실에 참천한 마천루이다.
작가와 언론사와 출판사와 평론가의 유기적 체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무명은 한마디로 드림줄이 없는 셈이다. 문학에 대한 애정이나 창작을 위해 쏟아 붇는 에너지는 무명작가라 해서 베스트셀러작가와 다르지 않다. 유명보다는 무명이 많으니 서러울 일도 아니다.
무명작가든 신인작가든 작품집을 내면 그래도 한번쯤 주목받았으면 하는 꿈을 꾼다. 그러나 일단 출간된 작품집이 서점에 진열되면서부터 그 꿈은 멀어지고 만다. 자비로 작품집을 출간한 작가들이 종종 출판사로 문의를 해온다.
어느 서점에 갔더니 자신의 작품집이 없더라는 말이다. 해당 서점에 할당된 작품집이 다 팔린 경우라면 흐뭇한 여운이라도 남을 것을, 작품집 상재를 아무리 형이상학적 가치에 둔다하더라도 출고된 지 며칠만에 반품으로 돌아서야 할 현실을 안다면 작가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 팔린 모양이라며 때로는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곤 한다.
한국문헌정보센터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ISBN 이나 ISSN의 바코드를 받으려는 서적들이 하루에도 둥덩산 같다. 서점 매장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매일 봇물처럼 쏟아지는 각종 신간들이 며칠이나 진열될까. 매장이 가장 큰 문고에서도 신간들을 오래 진열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출판사가 거래서점에 좀더 오래 진열해달라는 부탁을 할 입장도 못 되며, 책이 꾸준하게 판매가 된다면 그런 부탁 없어도 스스로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할 테고 진열대에서 사라졌다가도 주문이 꾸준하다면 다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대형서점에서 조차 자리 한 귀퉁이 차지하기가 힘드는데 동네서점까지 사라지고 있으니 이래저래 무명은 설자리가 없다.
어떤 지인은 한달 생활비 중 서적구입비가 필수항목이라고 했다. 매월 한 두 권의 책을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에 가서 구입한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 작가들이 자성해야할 부분도 있다. 독자들이 책을 안 읽는다거나 서점진열기간 짧다고 칭얼댈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료작가가 작품집을 출간해도 외면하면서 어찌 무독(無讀)의 탓을 하고 호소를 하랴.
우리 스스로 먼저 구입하고 읽고 쓰자. 인터넷이 발달되어 홍보하기도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가능성을 보았다. 비록 잠시일지언정 무명이며 신인인 작가의 작품집이 유명문고에서 당당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것을.
<뉴스와이어 신디케이트 / 이승훈 월간문학저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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