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홍승우 기자] 최근 명의위장을 통한 수백억원대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타이어유통전문기업 ‘타이어뱅크’가 공식거래도 없는 브랜드 타이어를 정식 판매하는 것처럼 속인 것으로 <매일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한국타이어 “타이어뱅크와 공식 거래 없어”
1991년 설립된 타이어뱅크는 국·내외 모든 브랜드 타이어를 취급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식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 곳은 일부 타이어 브랜드뿐이었다.
또 점장들을 통해 소비자를 상대로 특정 브랜드 타이어를 구매하도록 유도시켜 소비자 선택권 제한 의혹까지 발생했다.
24일 <매일일보>는 타이어뱅크가 업계 1위 ‘한국타이어’와의 공식거래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
타이어뱅크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국·내외 모든 타이어 브랜드를 취급하는 선진국형 타이어전문점’이라며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넥센타이어 △요코하마 △던롭 △미쉘린 △피렐리 등이 브랜드 마크가 표시돼있다.
실제로 타이어뱅크 매장에 "한국타이어가 있냐"고 요청하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면서 구비돼 있다고 한다.
이에 한국타이어 측은 타이어뱅크에 자사 타이어를 공식적으로 공급한 적이 없다며 ‘타이어뱅크와 거래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2004년 7월부터 ‘티스테이션(T'Station)’을 운영했고, 주력하고 있다”며 “기존 가맹점 및 유통채널 권리확보와 타이어뱅크와의 경영방침도 맞지 않아 거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한국타이어도 타이어뱅크 설립 이듬해인 1992년부터 소매 방식의 타이어 전문점 ‘오토피아’를 선보인 바 있어 타이어뱅크와의 거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해당 관계자는 “타이어뱅크에서도 한국타이어를 판매하는 경우가 있긴 있다”며 “공식거래가 아닌 타이어물류센터에서 도매업자들을 통해 소량의 타이어를 구한 뒤 판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홈페이지 및 매장 광고를 통해 공식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업체의 제품을 있는 것처럼 표시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 사유로 볼 수 있다”며 “해당 사안은 부당표시·광고행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타이어뱅크, 특정 브랜드 제품 밀어주기 교육 정황
또한 익명을 요청한 전 타이어뱅크 점장 A씨는 “재직 당시 본사로부터 소비자에게 한국타이어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소정의 교육을 받았다”며 “넥센타이어만 판매하도록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A씨에 따르면 전국 365개 매장을 운영 중인 타이어뱅크는 본사 차원에서 ‘한국타이어 판매 불가’ 방침을 전국 매장 점주들에게 강요했다.
타이어뱅크의 방침을 전달받은 각 지부장들은 점장급 근로자들을 모이게 해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은 소비자에게 한국타이어를 구매하지 못하게 하고, 넥센타이어를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매뉴얼을 통해 숙지하도록 이뤄졌다.
매뉴얼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고객으로부터 한국타이어를 문의하는 전화가 걸려오면 한국타이어 수량이 있다고 말해 고객을 유도한다. 고객 차량이 매장에 진입하면 차량을 리프트로 들어올리고, 바퀴를 빼낸다. 이후 마치 한국타이어가 있는 것처럼 직원에게 타이어를 가져오라하고, 직원에게는 미리 “방금 다른 고객에게 타이어를 판매했다”고 말하도록 지시한다. 그 다음 다른 브랜드 제품(특히 넥센타이어)을 재량껏 가격을 제시해 고객에게 판매하도록 한다’는 식이다.
A씨는 “이런 식으로 판매하면 10명 중 8명은 넥센타이어를 장착한다”고 주장했다.
본사의 방침뿐만 아니라 점장들이 넥센타이어 판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본사가 지급하는 성과급이 타이어 브랜드 별로 차등 지급됐기 때문이다.
A씨는 “타이어뱅크 성과급 기준표를 보면 한국타이어 비중이 가장 적었다”면서 “점장들은 한국타이어를 팔면 남는 게 별로 없어 기타 브랜드 타이어를 소비자에게 강권하게 되는 식”이라고 말했다.
성과급 기준은 한국타이어 10%, 금호타이어 20%, 요코하마·미쉘린 등 기타 브랜드 20~40% 순이며, 넥센타이어는 성과급 비중이 45%로 책정됐다.
예를 들면 같은 10만원 상당의 타이어 1개를 판매할 때 한국타이어는 1만원, 넥센타이어는 4만5000원이 점장들에게 성과급으로 책정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유독 타이어뱅크가 넥센타이어를 우선시 여긴 이유는 ‘양사간 오랜 관계’ 때문이다.
IMF 당시 부도 위기를 겪었던 넥센타이어(전 우성타이어)는 국내 영업망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으로 타이어뱅크를 선택했다.
이때부터 돈독해진 타이어뱅크와 넥센타이어와의 업무적 관계는 전문경영인 영입 후에도 두터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06년 넥센타이어는 전문경영인으로 삼성코닝정밀유리 대표 출신 홍종만 전 대표이사를 영입한 바 있다.
이후 홍 전 대표는 경영방침을 해외 수출에 주력했던 만큼 국내 영업에서는 기존에 영업망이 형성돼있던 타이어뱅크에 의존해야하는 구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넥센타이어도 자사 타이어 유통 매장인 ‘타이어테크’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는 있지만 자사 제품 주요 프로모션·방침 등에 타이어뱅크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 양사간 견고한 관계를 나타냈다.
타이어뱅크가 성과급까지 조정하면서 유독 넥센타이어 판매를 종용한 것에 대해 넥센타이어 측은 “타이어뱅크의 판매 정책에 따른 사항”이라며 “자사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속적 매출목표 상승…인사고과 압박
또한 매장별로 매출목표(인덱스)까지 부여돼 특정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만약 이런 판매 시스템이 본사나 매장별 각 점장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타이어뱅크는 각 매장 매출에 대비해 매출 목표를 점차 상향시키며, 본사만 이익을 취하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타이어 업체들은 매장마다 매출 목표를 정하고, 달성 여부에 따라 타이어 공급가격을 달리한다.
목표 매출을 달성하면 이전 공급가격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가격을 좀 더 상승시키는 방식이다.
결국 목표 매출을 달성하지 못한 매장들은 기타 매장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최근 국세청이 밝혔듯이 대부분 타이어뱅크 매장이 개인 사업자가 아닌 월급을 받는 타이어뱅크 소속 직원들이 근무하는 직영점이다.
이들은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가격경쟁력 뿐만 아니라 인사고과에서도 악영향을 받는 이중고를 겪었다.
실제로 타이어뱅크는 매출이 좋지 않은 매장의 점장들을 수시로 변경했다. A씨는 “타이어뱅크 매장을 가보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점장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며 “김정규 타이어뱅크 대표의 결정에 따라 점장이 수시로 변경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각 매장의 매출을 보고 받고, 목표매출을 달성하지 못한 매장 점장들에 대해 질책성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본사의 매출 목표와 방침만으로도 점장들이 받는 압박이 상당했다”며 “거기다 질책성 인사까지 더해져 점장들의 업무적 고통이 상당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