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파업으로 징역 11년 6개월 집행유예 21년…벌금만 2천740만원
[매일일보닷컴] ‘실질사용자인 기아차의 교섭 참가’ ‘2007년 임단협 요구안 수용’ 등을 요구하며 기아자동차 협력업체 노조가 화성공장(1ㆍ2공장) 생산라인을 점거하는 등 파업에 돌입했으나 좀처럼 사태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양측의 의견차이가 워낙 커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으나 협상은 좀처럼 진척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장은 여전히 구사대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성공장의 일부 조ㆍ반장과 비정규직들 사이의 대치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이번 사태가 노사 간 갈등이 아닌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사이의 이른바 ‘노노갈등’으로 비하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는 “사측의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사측은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다.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랄 뿐”이라는 입장이다. 화성공장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기아차 화성공장 논란의 핵심은 뉴코아-이랜드노조의 투쟁에 따라 한바탕 우리 사회가 홍역을 치른 바 있는 ‘비정규직’ 문제다.
기아자동차에는 외견상 두 개의 노조가 있는데 바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정규직 노조인 기아차 노조(지부)는 상급단체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로 두고 있다. 반면, 비정규직 노조는 금속노조 산하 경기지부를 상급단체로 두고 있다. 두 노조의 이해와 요구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 금속노조 관계자는 “임단협 투쟁 등이 불일치해 예전부터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쉽게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회사측과 기아차(정규직) 노조의 관계는 그런대로 ‘원만한’ 반면, 비정규직 노조와의 관계는 ‘불편’하다는 대목이다. 물론 기아차 노조 역시 올해 임단협을 앞두고 파업을 벌이며 사측과 대립각을 형성하는 등 적잖은 진통을 겪었지만 이 회사는 지난 달 30일 조남흥 사장과 김상구 노조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07년 임금협상 조인식을 갖고 갈등을 일단락 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를 상대하는 기아차의 태도는 정규직의 그 것과는 사뭇 다르다. 민주노동당과 금속노조 측의 주장에 따르면 사측은 비정규직 노조와 ‘교섭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 일각에서 이른바 ‘부당노동행위’라는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11차례에 걸쳐 (사측이) 교섭에 나오지 않아 지난 달 23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간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상상을 초월한 극렬한 탄압을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사협력지원실에 문의한 결과 김수억 지회장을 비롯해 총 6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사측이) 대대적인 손배 가압류를 예정하고 있다”면서 “뿐만 아니라 구사대를 동원해 파업을 하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등 폭언과 폭행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기아차의 이 같은 ‘비정규직 외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2005년 20여 개 하청업체와 집단교섭을 통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또 지난해에는 하청업체 집단교섭 뿐 아니라 원청인 기아자동차와 직접 합의서(확약서)를 체결한 바도 있다. 노총 한 관계자는 “2007년의 교섭 요구는 기존 관례에 비춰 봐도 지극히 상식적”이라며 사측의 태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파견근로법 "생산업종 파견 불허" 업계 "나몰라라~"
금속노조 한 관계자는 한발 더 나아가 “파견근로법에 따르면 생산업종에서는 파견이 불허돼 있다”면서 “그러나 자동차 업종에서는 불법이 비일비재하고, 현대차의 경우 불법으로 판정도 됐는데도 여전히 대공장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협력업체들에게도 고용보장을 요구하지만 ‘고용의 연속성’ 차원에서 원청인 기아차에게도 요구를 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현재 △비정규직 고용보장 △상여금 700% 인상 △해고자 복직 △불법파견공정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지난 달 23일부터 화성공장의 도장라인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다.
이에 대해 사측은 ‘협력업체 문제’라며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단지 화성공장이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점거농성에 따라 가동이 전면 또는 부분 중단돼 지난 달 30일을 기준으로 7천300대, 총 1천억 원대의 생산차질을 빚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특히 “화성공장의 생산량이 하루 2천~2천500대에 이른다”며 “농성이 장기화될 경우 수만 대의 차량이 생산되지 못해 그 피해액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 고위 관계자는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지만 공권력 투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실제 경찰에 따르면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공권력 투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사측의 이 같은 태도는 비정규직 노조가 더욱 투쟁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 지난 달 21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2005년 기아차 비정규직 파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정규직 두 명을 포함한 17명의 노동자들에게 징역과 벌금 등을 선고했다.
수원지법에 따르면, 법원은 기아차 비정규직 노조원 17명에 대해 징역 11년 6개월, 집행유예 21년, 벌금 2천740만원을 선고했다. 기아차는 지난해에도 1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소고발한 상태고, 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비정규직지회 김수억 지회장은 이와 관련 “올해 투쟁에서 패배한다면 비정규직 지회는 가혹할 정도의 탄압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벼랑 끝에서 물러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비정규직 노조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정규직 노조의 싸늘한 시선이다. 노노갈등인 셈이다. 김상구 기아차 노조 지부장은 “기아차 3만4천명의 생존 문제가 달려 있는 공장 점거를 풀어주길 바란다”며 “이것이 어렵다면 도장공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고 한 언론은 보도했다.
<매일일보>은 이 같은 발언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김 지부장과의 전화통화를 요청했으나 노조 측은 이를 거부했다. 사측도 노노갈등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다. 이를 반영하듯 공장 내에선 ‘정규직에 의한 비정규직 죽이기 계획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루머도 떠돌고 있다.
노회찬 의원은 이와 관련 “기아 원청은 즉각 노조에 대한 폭력적 탄압을 중단하고, 모든 고소고발을 취하해야 한다”며 “뿐만 아니라 노조의 교섭에 즉각 응하고, 진지하게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탄압으로 일관하는 사측의 태도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며 “뉴코아-이랜드노조의 투쟁에 이어 다시 한 번 기아차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이 노동계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