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정부가 내년 예산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607조7000억원을 확정했다. 이로써 국가부채도 내년 사상 첫 1000조원 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정부 재정이 부실화될 것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예산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예산 사용처는 적절한지 등 각계 의견이 분분하다. 코로나19가 걷히지 않는 현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예산 낭비라거나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정부 부채는 경기 지지대 역할을 했으나 다양한 부작용도 동반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 내 자산가격 버블 위험이 커졌으며 그만큼 금융시장의 불안감도 증폭됐다. 정부는 물가급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동시에 코로나19 대책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통화・재정정책 모두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금리가 바닥일 때 상황이 더 악화되면 더 내릴 금리가 없는 만큼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된다. 막대한 지출을 했는데 상황이 개선되지 않거나 더 나빠진다면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예산을 늘리지 않고 다른 뾰족한 수도 없는 듯하다. 그러면 정해진 예산이 제대로 쓰일 곳에 쓰여야 하는데 현재 사상 최대 기록을 쓰는 수출 실적이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 같다.
지난 11월 수출은 무역 역사상 처음 600억달러대에 진입했다. 올해 연간 수출액과 무역규모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선방한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한편 반대쪽에서 이를 깎아내리는 다툼이 일고 있다.
현실은 열악하다. 국내 오미크론 확진자가 늘어나 코로나19 전염병 사태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병실이 부족해 재택 치료를 하고 백신이 보급된 이후에도 확진자 수가 역대치를 갱신하는 등 극악한 상황에서 국민은 이질적인 경제 지표를 접하고 있다. 그래도 역대급 수출 기록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경제상황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긍정의 힘이 될지, 착각에 빠지게 할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방역조치가 다시 강화돼 위드코로나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방역조치는 왜 확진자가 늘어난 다음에야 이뤄지는지, 진즉 이뤄졌더라면 오미크론 발생국이란 오명은 피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다시 수출을 들여다보면, 금액 수치로 역대치를 갱신하고 있지만 수출 물량은 올해 평균을 따지면 작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집계된다. 금액이 늘어난 주된 요인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품목에서 기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수출 신기록엔 거품이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실정을 제대로 보지 않고 기록에만 집착하면 정책도 오판을 내릴 수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도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고 낭비하게 된다.
멱살을 끌다시피 수출을 견인한 반도체는 내년 불확실성이 많은 상황이다. 미국 출장에서 냉혹한 현실을 접했다고 언급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연말 인사에서 사장단을 대거 교체했다. 역대급 호실적을 바탕으로 사장단이 대부분 유임될 것이란 재계 예측을 벗어났다. 지금의 글로벌 삼성이 존재하는 과정에서도 고 이건희 회장이 실적과 무관하게 위기를 강조한 바 있다. 국가적으로도 수출 기록에 현혹되지 말고 재정이 필요한 곳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