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회사간 채무보증 금지, TRS 우회 여부도 조사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기업집단 내부의 총수익스왑(TRS) 등 금융 파생상품 활용 방식이 부당한지에 대해 조사당국이 칼을 들었다. 파생상품을 통해 지배주주가 지배력을 손쉽게 확대하는 등 편법적 문제가 있다고 시민단체가 주장해온 사안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집중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앞서 TRS 방식으로 SK실트론 지분을 보유했던 SK그룹 사례가 단초가 됐다.
11일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내 금융파생상품 활용 방식에 대해 공정위가 올해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일례로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를 파악할 때 TRS 등 파생상품계약이 고려될 수 있다. 올해부터 사익편취 규제 대상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공정위는 규제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단속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총수일가의 규제 대상 회사에 대한 직접 지분 외에도 TRS 등 파생상품을 통한 간접 지분 보유 사례가 조사망에 걸릴 수 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인수 건에 대해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 제재 결정을 내린 데도 TRS가 쟁점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SK실트론 지분 29.4%를 TRS 계약을 통해 간접 보유했다. SK실트론 지분 소유관계 현황공시에서는 최 회장의 지분 취득 사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회사기회유용에 관한 사익편취규제를 적용해 제재할 수 있는지 여부도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는 그러나 주식 보유의 개념과 관련해 ‘소유에 준하는 보유’도 소유로 인정하고 있어 공정위는 이를 근거로 제재한 듯 보인다. 이번 조치는 사업기회 제공행위와 사실상 동일한 행위를 규제하고 있는 상법상 ‘회사기회 유용금지’ 규정이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해당 규정을 적용한 소송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이뤄진 첫 사례였다.
최태원 회장은 공정위 제재 결정에 앞서 전원회의에 직접 참석해 사건 의혹을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SK 측은 당시 SK가 SK실트론 잔여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지 않은 것은 사업기회 제공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잔여 지분 매각을 위한 공개경쟁입찰도 해외 기업까지 참여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해당 사건에 대해 과징금만 부과하고 별도 고발 조치는 하지 않았으나 시민단체가 고발해 사건은 경찰 조사 단계로 넘어갔다.
같은 맥락에서 공정위가 TRS 주식 보유 개념을 확장해 사익편취규제 대상 회사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지배구조 관행상 다른 유형들도 부당행위 여부를 따져 볼 전망이다. 일례로 과거 현대그룹의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TRS 거래를 체결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등 친족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 이들의 지분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초과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자 현정은 회장 측이 현대상선에 대한 TRS 거래를 통해 약 10%의 의결권을 확보, 경영권을 방어한 사례다.
해당 TRS거래는 거래 상대방인 넥스젠캐피탈 등에게 주식취득에 따른 금융비용을 보전해줌과 동시에 현대상선 주가하락 시 손실도 보전해 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TRS 거래가 현대엘리베이터에 막대한 재무적 위험을 초래하고 현정은 회장의 그룹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한 과거 한진해운의 경우 회사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해 당시 계열사였던 대한항공이 교환사채 인수자와 TRS 계약을 체결했다. 교환사채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차액정산 계약을 체결해 채무에 대한 손익을 인수해주는 식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사실상 채무보증과 다름없다며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간 채무보증을 금지하는 규정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실제 올해 조사에서 자금보충약정, TRS 등 대기업집단 계열사간 채무보증과 유사효과를 가진 금융상품 활용 실태를 파헤치기로 했다. 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차기 정부에서 채무보증 규제를 확장하는 추가적인 법 개정 작업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