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책은행 임금피크 직원 1300여명
[매일일보 김경렬 기자] “저희 회사에서는 최근에 퇴사한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부장이셔요. 부장까지 진급하지 못하고 팀장으로 퇴직하신 분들도 많아요”
국책은행을 다니는 A씨는 사내 젊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이같은 볼멘소리를 했다. 최근까지 국책은행은 인사적체에 시달렸다. 업계에서는 내달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에 강력하게 어필해 현상 극복에 나서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의 희망퇴직자는 0명이다. 이들 기업의 임금피크(임피) 직원은 계속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임피 제도는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3대 국책은행의 임피 인원은 2017년 249명이었다. 작년 말에는 1300명이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기업은행의 임피 인원만 1000명이 넘는다. 기업은행은 4년 만에 임피 인원이 17배 증가했다.
정년이 다가온 직원들이 임피를 선택해 회사에 남기로 하면서 적체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부장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연령이 찬 팀장의 퇴사도 늘었다.
이와 관련 홍남기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 마지막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금융노조가 꾸준히 성명서를 냈고, 국회의원들이 희망퇴직 처우개선을 적극 주문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대답을 받지 못했다. 청년 실업 문제를 고려한 금융권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결단은 없었다.
금융공공기관의 적체는 기재부의 인사 적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예를들어 수출입은행은 수출입과 관련된 국책 사업만 하기 때문에 완벽한 기재부 산하 기관이다.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민간사업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희망퇴직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지금의 희망퇴직 제도는 지난 2014년 정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금융공공기관의 명예퇴직금은 잔여 보수의 85~95%였다. 하지만 감사원이 이를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기재부는 ‘임금피크제 기간 급여의 45%’로 퇴직금 한도를 낮췄다. 정년까지 5년 이하 남은 직원이 기존 연봉의 절반 이하를 수령하는 식이다. 당연히 회사에 남는 것을 택하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이 선다.
국책은행의 희망퇴직금은 시중은행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대부분 민간기업들은 36개월 이상 임금을 일시 지불하는 조건으로 퇴직자를 받는다. 2015년 이후 은행들은 연평균 1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제일·한국씨티 등 7개 은행의 희망퇴직자는 4000명이 넘는다. 특히 외국계 은행 중에서는 6억원이 넘는 특별퇴직금을 내거는 경우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국책은행의 희망퇴직금은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퇴직금 잔치를 벌인다는 말들이 부담스러워서 낮게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많은 직원들이 새로운 정부 방침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윗선이 고여 있는 국책은행의 상황은 금융권의 트렌드와도 배치된다. 지난해 10개 국내 은행 직원 수는 2500여명 감소했고 이중 희망퇴직자가 상당수 인원을 차지했다. 시중은행은 MZ세대 고객을 잡기 위해 인력을 젊게 꾸리고 있다. 최근에는 임원 연령도 확 낮아졌다.
한 시중은행의 부장은 “임원이 된다고 해서 행복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라며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은행에 몸담은 수 십 년간 배워온 자세였습니다. 시중은행에서 임피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입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