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제품기업 2분기 적자전환 등 산업 사이클 둔화 양상
전자・화학·철강업 등 투자보류・재고수급관리 비상경영 확대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미국과 유럽의 강력한 긴축 기조에 전쟁 장기화 등이 겹쳐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산업의 쌀 격인 반도체와 화학소재 등 산업소재 경기 지표의 하락 전환으로 산업 사이클 하향세도 나타난다. 이에 전자, 화학, 철강업 등 수출기업들은 투자를 보류하고 불확실성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비상경영체제를 전개 중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자포리자 원전 사고 불안까지 더해 우크라이나이와 러시아 교전이 뜨거워진 가운데 전쟁에서 비롯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과 유럽은 강력한 긴축기조를 지속할 방침이다. 물가 부담에 위축됐던 글로벌 소비는 긴축 전환에 따른 유동성 감소로 한층 지갑을 닫게 됐다. 이런 거시경제 여파가 최근 국내 산업 경기지표 하락으로 속속 연결되고 있다.
지난달 파운드리 호조에 힘입어 전체 반도체 수출은 역대 동월 최고 실적을 달성했지만 메모리반도체는 시황하락이 계속된 데다 전방 수요산업 부진이 짙어져 23개월 만에 감소 전환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가 메모리 시황 부진에도 깜짝실적을 거둔 데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등 서버 수요가 견조한 덕을 봤으나 그 흐름이 약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데이터 저장장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판매 부진이 심상찮다. SSD는 지난달 전자제품 수요 감소로 14개월 만에 10억달러 이하를 기록하며 전년 동월 대비 22.1% 감소한 8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출금액은 환율 영향도 받지만 물량 면에서도 감소 전환은 뚜렷하다. 7월 SSD는 203.1톤을 수출했는데 전년 동월 209.3톤에서 감소 전환했다. 지난 6월만 해도 SSD는 251.6톤으로 전년 동월 240.7톤보다 수출 성장했었다. 시황 면에선 D램 하락세가 계속되는 데다 낸드플래시의 공급과잉이 심해지고 있다. 중국 YMTC가 신공장 가동에 들어가 하반기에 저가 SSD 판매 확대에 나설 것도 국내 수출에 부정적이다.
이런 시장 불확실성이 심해지자 SK하이닉스는 신규 시설투자를 보류했고 삼성전자도 투자 및 재고 수급전략을 수시로 변경하며 고심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또는 매일 단위로 수요 변화 동향을 파악하는 기간을 단축시켜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반도체업계 전반적으로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리스크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IT 수요 약세 우려 및 메모리 가격 하락으로 하반기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산업재의 원재료인 석유화학제품은 시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정유사들이 주로 취급하는 아로마틱스는 최근 미국에서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후퇴로 인해 수요가 약해질 것이란 걱정이 대두되면서 시황 약세를 불렀다. 에쓰오일이 최근 위험물 안전관리법 저촉 문제로 설비 사용정지명령이 내려져 시황이 일시 오르기도 했지만 에쓰오일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의 소재로 쓰이며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의 주력제품인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은 최근 수출 감소세가 뚜렷하다. 지난달 8만1071톤을 수출해 전년 동월 10만4630톤에서 크게 줄었다. 6월에도 9만1705톤을 수출해 전년 동월 10만7551톤에 못미쳤다. ABS는 국내 수입량도 줄어드는 추세라 전방 자동차, 가전 산업 등의 수요 둔화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화학제품의 기초유분인 에틸렌 시세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다수의 화학 대기업들이 생산하는 에틸렌은 전방 수요나 채산성 악화 때문에 판매가 줄어들고 있고 중동의 공급확대가 더해져 최근 시황이 하방압력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화학제품 거래시장 내 스폿 수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관망세가 짙은 장세”라며 “이미 값싼 수준까지 내려왔지만 시황이 다시 오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분기 석유화학업계는 1분기보다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중국의 도시봉쇄까지 업황에 부정적 영향을 더하면서다. LG화학의 이익 감소폭이 컸고 범용제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롯데케미칼과 여천NCC, 대한유화는 2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그간 호실적을 구가했던 철강업도 수익성 방어에 부침을 겪고 있다. 5월부터 8월까지 철스크랩 가격이 하락했다. 이에 다른 철강재 가격 하락도 예상됐다. 철강업계는 원료탄 등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그간 강세를 이어오던 철강재 가격이 글로벌 철강 수요 정체 속 약세 전환하며 수출감소로 연결될 가능성을 내다본다. 이에 최근 비상경영을 선언한 포스코는 하반기 생산량을 조절해 재고 관리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한편, 그간 초유의 호황을 누려온 해상운송업도 업황 정점을 통과한 정황들이 포착된다. HMM, 팬오션, 대한해운은 2분기 사상 최고 매출을 달성하는 등 호실적을 이어갔다. 하지만 컨테이너 운임은 연초부터 약세 전환했다. 인플레이션과 공격적인 유동성 긴축 정책 등으로 미국과 유럽의 내수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고 중국 코로나 봉쇄 등으로 글로벌 물동량이 제한될 전망이 운임을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