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웃 가족들과 저녁 식사하면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이야기를 들었다. 이웃의 지인 아들이 작년 입시에서 서울대 공대에 합격했는데, 울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서울대 공대 합격에 감격해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의대에 떨어지고 서울대 공대만 합격해서 입시에 실패했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단 서울대에 입학하고 반수를 해 다시 의대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대·고려대·연세대(SKY) 이공계열 학생 중 1421명이 중퇴했다. 2020년 893명, 2021년 1096명 등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잘 아는 대로 SKY 중퇴생의 80~90%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로 이동했다. 학부모 사이에서 서울대 이공계를 다니다가 지방 국립대 수의대로만 옮겨도 성공적인 메디컬 진입 케이스로 통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만큼 사회 변화를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도 없다. 조선시대 이래 공무원이 늘 꿈의 직업이었다면 이젠 정년도 없이, 경기도 타지 않으며, 18년째 정원이 동결된 의사와 같은 메디컬 분야가 이른바 '원톱 잡'이다. 메디컬 분야 자격증은 가장 안정된 삶의 보증 수표이며, 기득권층 진입을 향한 입장권인 셈이다.
미국은 어떨까. 요즈음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신흥 기업가는 스탠퍼드대 졸업장마저 내팽개친 중퇴생(dropout)들이다. 챗GPT 열풍의 주역인 오픈AI 설립자 샘 올트먼과 25세 나이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자율주행차 센서·라이다 기업인 루미나테크놀로지의 오스틴 러셀이다.
올트먼은 컴퓨터공학과를 2학년 때 중퇴하고 위치기반 스타트업을 차려 대박을 친 뒤 일론 머스크와 함께 오픈AI를 세웠다. 물론 머스크도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등록한 지 이틀 만에 “더 배울 게 없다”며 창업에 나선 인물이다. 두 살 때 원소주기율표를 외우고 열 살 때 닌텐도 게임기를 개조해 휴대폰을 만들 정도로 천재인 러셀이 스탠퍼드대 물리학과에 다닌 기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수학과를 2학년 때 중퇴했고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또한 하버드대 중퇴이다.
한 사회의 미래는 젊은 엘리트의 야망과 포부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예비 엘리트들은 혁신과 포부 버리고 기득권의 진입만을 꿈꾸고 있다. 청년들은 욕하는 것은 아니다. 꿈꿀 수 없는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의 책임이 더 크다.
마지막으로 리드대학 중퇴생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돼라(Pirates! Not the Navy!)'고 적힌 티셔츠를 나눠주었다. 해적은 무법적이고 자유롭게 사고하는 혁명 정신을 상징한다.
우리 청년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사회, 저마다 현실에 안주하는 '해군(navy)'이 아닌, 해적을 추앙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