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오시내 기자 | 지난 10일 문학계를 넘어 온 국민이 기뻐할 소식이 들려왔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의 저자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에서 나온 두번째 노벨상이며, 한국 여성 최초의 수상이다. 나아가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기도 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했다.
2022년에도 한국을 기쁘게 한 수상이 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일이다. 더불어 같은 시상식에서 배우 송강호는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100% 한국어로 만든 영화가 국제적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 기쁜 순간이었다. ‘기생충’은 한해 앞선 2019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이들에게는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였다는 점 외에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다른 견해를 가진 문화·예술인을 억압하기 위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이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누리꾼들은 박찬욱, 송강호, 봉준호를 함께 언급하며 블랙리스트의 기적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한편,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비슷한 시기 이와는 반대되는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정부가 지난 8월 15일 열린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광복회 예산을 32억원에서 26억원으로 삭감했다 사실이다. 반면 광복회장을 대신해 기념사를 맡았던 순국선열유족회 지원 예산은 3억1000만원이 증액됐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내년도 국가보훈부 예산안을 입수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순국선열유족회는 월간지 ‘순국’의 구입비용을 올해 1억9000만원에서 내년 5억원으로 늘리는데 해당 예산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보훈부는 “독립운동 관련 정보를 일반 국민에게 확대 보급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언급했다.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사건이 정권이 바뀐 후에도 반복되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문화’와 ‘광복’이라는 키워드가 다를 뿐이다. 다행히도 문화계에는 수많은 시상식이 있어, 정부의 압박에도 우수한 작품성을 대중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해외 대중은 우리 정부의 압박에서 자유롭기에 보다 공정하게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반면 광복에는 시상식이 부재하며, 해외 대중의 관심에도 멀리 있다. 최근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명령을 받을 것을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가 일본 정부의 정치력에 밀린 듯해 보이기까지 한다.
정부의 주관적인 판단이 문화에 반영돼선 안 되는 것처럼, 대한민국을 지금에 있게 한 광복에도 정부의 입김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물론, 광복을 위해 결성된 단체가 이익집단으로 변질된다면 이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겠지만, 이익집단을 판단할 기준이 정부의 생각이 돼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말이 허공을 떠도는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또 다른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예의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