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현대 검도에선 효율성을 짐작하기 어려운 기술이 몇가지 있다. 양손으로 쥔 검을 어깨 위로 치켜 드는 ‘팔상세’, 칼날 부분이 몸 뒤로 향하도록 칼을 허리 옆으로 늘어뜨리는 ‘협세’, 그리고 칼집에서 칼을 뽑는 동시에 적을 베는 ‘발도술(拔刀術)’이다.
보통 검도 시합에선 눈 앞의 상대를 향해 칼을 앞으로 뻗어 겨누는 자세가 기본이다. 내민 칼 뒤에 몸을 숨겨 방어하는 동시에 곧바로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다. 반면 팔상세나 협세는 어정쩡한 자세 탓에 공격과 방어 전환에 불리하다.
시합에서 발도로 승부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발도는 무방비 상태에서 한손으로 칼을 휘두르는 꼴이므로, 차라리 처음부터 칼집을 버리고 양손으로 검을 쥐는 것이 더 강력하고 안전하다. 몇 미터 내 거리에서 적을 마주한 채 결투를 시작하는 현대 검도 기준으로 보면, 이 자세들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현대의 잣대로 해당 자세들을 ‘필요없는 것’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사실 해당 자세의 진면목은 전장에서 발휘된다. 아군과 적군이 뒤섞인 전쟁터에서 기다란 날붙이를 아무렇게나 쥐고 뛰면 본인이나 주변 사람이 다칠 수 있고 무기가 파손될 우려도 있다. 이때, 팔상세와 협세를 취하고 달린다면 본인에게나 주변에게나 매우 안전하다.
발도술은 결투가 아니라 암살에 특화됐다. 칼을 칼집에 넣은 상태로 상대방을 방심을 유도하고, 찰나의 순간에 뽑아 벤다. 결국 세 기술 모두 일대일 결투 위주의 현대 검술과는 맞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었던 셈이다. 검도 관장에게 아직 이런 기술을 가르치는 까닭을 물어보니 “꼭 경기에 필요한 기술만 가르치진 않는다. 일단 배워두면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도태됐던 기술들이 나중에 재발굴된 사례가 적잖다. 대표적으로 ‘종이접기’가 있다. 20세기엔 어른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있는 취미였지만, 영상 매체의 발달로 놀거리가 많아지면서 그 인기가 시들해졌다.
종이접기는 의외로 우주과학 분야에서 활발히 활용 중이다.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미우라 코료는 우주과학에 종이접기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종이접기 기술을 통해 장치의 부피와 크기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안한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종이접기 기술을 활용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휴대용 수신기 ‘삐삐’는 휴대폰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다만 일반인들에게만 잊혀졌을 뿐이지, 사실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요식업 창업 붐’이 불면서, 음식물을 주문한 손님과 빠르게 소통할 물건이 필요해졌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선호출기가 삐삐의 후손인 셈이다.
즉, 쓸모없는 학문은 세상에 없다. 지난 몇 십년간 국내 학생들은 이른바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을 찾아 진로를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일명 ‘돈 안 되는 기술’은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 한국에선 의대 쏠림 현상으로 대표된다.
앞날이 불투명한 현대 사회에서 돈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만 본인이 배우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억지로 진로를 맞출 필요는 없다. 어느날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해보고 싶은 공부를 다 못 해봤다는 후회가 더 클 수 있다. 배우고 싶은 학문이 당장은 쓸모없을 순 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닐 뿐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삶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다면, 해보고 싶던 공부에 다시 도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