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성동규 기자 | 미국의 인지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는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건물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일명 '투명 고릴라' 실험으로 6명의 학생을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은 검은색 셔츠를, 다른 한 팀은 흰색 셔츠를 입힌 뒤 두 팀이 뒤섞여 농구공을 패스하게 했다.
실험이 진행되는 중간에 검은색의 고릴라 의상을 입은 학생이 패스하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들어와 가슴을 두드리며 킹콩 흉내를 내고 퇴장했다.
이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했고 피실험자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흰색 셔츠를 입은 팀이 패스를 몇 번 하는지 세어보게 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피실험자들의 절반 이상이 흰색 팀의 패스에만 집중하느라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그 외의 정보는 배제하는 우리 뇌의 선택적 지각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사실이 그렇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는 지난 17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고발된 김건희 여사와 김 여사의 어머니인 최은순 씨 등을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김 여사가 시세조정 사실을 인식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금융시스템의 근간인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정이었으나 분명 검찰에선 실제로 김 여사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간 검찰의 선택적 지각을 고려하면 그다지 놀라울 만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향후 김 여사 특검법 통과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도 예견해 보자. 이는 '투명 고릴라' 실험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고릴라의 존재를 뒤늦게 깨달은 피실험자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성찰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실험이 조작됐다면서 진실을 부정하는 이도 있었다.
언젠가 검찰이 고릴라와 마주했을 때 보고도 보지 못 했다고 우기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반성이 없는 이런 식의 태도는 우리 금융시스템을 후진국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