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대응 최전선 PA간호사, 의사 부재로 업무 부담 ‘한계’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의료공백 장기화로 병원이 경영난을 겪는 가운데, 의사와 보건의료종사자 사이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이 일반직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어 내부 직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아산병원지부는 "병원 노동자를 배제한 비상운영체제는 거부할 것이며, 병원은 미복귀 전공의들과 일부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을 방관하지 말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올해 연말 기준으로 50세 이상이면서 20년 넘게 근무한 일반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달 19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이는 2월부터 이어진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수술이 대거 축소되며 병원의 경영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달 15일부터 비상운영체제를 가동 중으로, 일명 '빅5' 병원 중 희망퇴직 신청을 최초로 시행하게 됐다.
병원은 "비상운영체제에 따라 자율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며 "희망퇴직은 병원 운영 상황에 따라 필요할 때마다 해왔고, 2019년과 2021년에도 시행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박승일 서울아산병원장은 이달 초 "2월 20일부터 3월 30일까지 40일간의 의료분야 순손실이 511억원“이라며 ”정부가 수가 인상을 통해 이 기간에 지원한 규모는 17억원에 불과하다"고 소속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낸 바 있다.
문제는 병원 측이 경영난의 원인인 의사를 건드리지 않고, 일반직 직원들을 대상으로만 희망퇴직 절차를 시작했단 점이다. 아산병원 노조는 "병원은 의사 집단행동 시작 시점부터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일부 경영진만의 결정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도입한 모든 제도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 사이에선 이번 희망퇴직으로 시작된 비상경영 조치가 권고사직 등으로까지 확대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병원에선 수술이 줄자 간호사들에게 무급 휴가를 강제하거나, 의사들의 공백을 간호사가 메꾸고 있어 관련 직원들의 업무·경제적 부담이 증가했다.
정부는 최근 무급 휴가중인 간호사가 다른 병원에서 근무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대한간호협회를 통해 근무의향이 있는 무급휴가 간호사를 조사 중이다. 또 지난달 7일 간호사에게 응급환자 심폐소생술, 응급 약물 투여 등 의사 업무 일부를 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의사가 부족한 병원에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간호사를 PA(진료보조)간호사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업무를 남은 간호사들이 메워야 하는 형편이 됐다.
현재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한 '빅5' 병원은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연세의료원), 서울대병원 등이다. 시민단체는 이번 의정 갈등으로 국민 혈세가 낭비됐다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시작한 의료 대란을 수습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 등 투입된 비용이 5000억원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지난달 1285억원 예비비를 편성하고, 건보 재정 1882억원을 두 달째 투입했다. 합산하면 5049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사직 의사들은 방관하면서, 현장에 남은 보건의료종사자들을 희생시키는데 혈세를 소모했다는 비판이다.
서울 S병원 간호사는 “사실상 의사를 대리하던 PA간호사의 업무는 암암리에서 행해졌다. 그런데 이젠 대놓고 관련 업무가 간호사로 넘어오면서, 간호사가 법적 책임까지 짊어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병원 행정 직원은 “이번 사태가 종식돼서 사직 의사가 다시 병원에 돌아왔을 때가 문제다. 병원 운영과 환자를 방치했던 의사들과 현장에 남았던 소신있는 의사 간 갈등은 물론이고, 의사들의 사직으로 피해를 봤던 보건의료 종사자들과의 관계는 봉합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