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신영욱 기자 | 최근 전 산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로는 단연 인공지능(AI)이 꼽힌다. 반도체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 D램 시장의 1할도 차지하지 못했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AI의 본격 상용화와 함께 필수 기술로 꼽히게 됐다. 특히 HBM은 공급 부족 현상에 대한 우려가 존재할 만큼 향후 수요도 확실한 '귀한 몸'이 됐다.
더욱이 AI 반도체를 필두로 한 첨단 기술 경쟁의 본격화는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의 필요도와 중요성을 키우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부분에 대한 우리나라의 상황은 썩 긍정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네덜란드 기업 ASML 독점 공급하고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7나노미터 시스템 반도체 및 10나노 중반급 미만의 D램 등 초미세공정에 반드시 필요하다. 또 핵심 공정 중 하나인 실리콘 관통 전극(TSV) 공정에 필요한 장비들은 미국 기업 램리서치의 독점 공급에 가깝고, EUV 공정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기업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합산치가 91%에 달하지만, 미국 등 해외 기업 없이는 사실상 양산이 불가능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전문가 중에는 국내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해외 투자 역시 중요한 부분이지만 반도체 강국이라는 현지 입지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해외 기업의 국내 유치를 위한 투자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미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자국 내 생산라인 유치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향후 AI 반도체 등 새로운 기술로 인해 휘둘리며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자국 내 생산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 있어 주도적인 전략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기업의 유치는 물론 국내 소부장 기업의 육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시장을 리드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물론 소부장 기업들도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을 통해 국내 토대를 탄탄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하나의 노력이 아닌 정부와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들까지 포함한 모든 업계의 노력이 필수 불가결하다.
AI가 촉발한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이제 막 서막이 오른 것뿐이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도 혁신과 도전을 통해 반도체 강국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 경험을 이미 갖고 있다. 아낌없는 투자와 노력으로 다시 한번 글로벌 패권 경쟁의 승자로 거듭나는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