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정부의 담뱃값 인상 추진과 관련해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올린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지만 세수 부족을 위해 국민의 고혈을 짜낸다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3일 보건복지부 및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담뱃세' 인상을 타진하고 있다.
지난 2일 문형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정기국회에 담뱃값을 4500원까지 인상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우리나라 담뱃값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싸다"며 "10년 정도 담뱃세 인상을 안했기 때문에 이번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담뱃값 인상론에 힘을 실어줬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 배경으로 세수 확보가 아닌 국민의 건강 증진을 내세우고 있다. 문 장관은 가격 인상 이유에 대해 복지부의 '헬스플랜 2020'과 관련 연구결과를 근거로 내세웠다.
'헬스플랜 2020'은 현재 37.6%인 성인 남성 흡연율을 오는 2020년까지 29%로 낮추자는 계획이다.
문 장관은 "2004년 담배가격이 500원 오른 후 판매량이 감소하고 흡연율도 15%p 정도 떨어졌지만 2008년 이후에는 흡연율 하락 추세가 정체에 빠졌다"며 "흡연율을 낮추려면 가격정책이 최선이기 때문에 담뱃값을 4500원 정도로 올려야한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관계자 역시 "이번 담뱃세 인상 검토는 세수 증대 차원이 아닌 국민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측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담뱃세 인상과 흡연율 감소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음에도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경기 부양을 위해 확장적 재정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세수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국세청은 201조9000억원을 국세로 걷어 당초 목표치인 210조4000억원보다 8조5000억원이 부족했다. 올해 역시 지난 5월까지 세수진도율이 40.5%에 그쳐 연간 목표세수치를 채우치 못해 세수 펑크가 우려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담뱃값 인상이 세수 확보를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당초 정부가 공공요금과 같은 직접세 인상으로 확보할려던 세수가 여론의 거센 반발이 일자 간접세 증대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특히 담뱃세와 주류세 같은 '죄악세 인상'은 국민 건강 증대의 명분이 있어 국민 저항을 상대적으로 최소화 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2500원 담배 1갑에 붙는 세금은 1550원 가량이다. 구체적으로 담배소비세는 641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354원, 지방교육세 321원, 부가가치세 227원, 폐기물부담금 7원 등이다. 흡연자들이 매년 국가에 간접세 형태로 내는 금액은 7조원 가량이다.
실제로 담뱃값을 1000원 올리면 한 해 2조8000억원의 세수가 늘어난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결과도 있다.
국회에서도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현행 평균 2500원인 담뱃값을 4500원으로 2000원 인상하기 위한 지방세법 및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이미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담배소비세를 현행 641원에서 1169원으로 82% 인상하고,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현재 354원에서 1146원으로 3배 가까이 올리도록 하고 있다.
김 의원은 개정안 통과시 담배 관련 지방세 징수금액이 연 4조2000억원에서 5조4000억원으로,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징수금액은 연 1조5000억원에서 3조5000억원으로 총 세수가 해마다 3조2000억원 증가해 정부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정부의 담뱃값 인상 추진에 대해 "과도한 담뱃세 인상은 공평과세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납세자연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중독성 있는 담배를 끊는 흡연자는 극소수일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담배세를 올리면 결국 담배를 끊지 못하는 저소득층 흡연자들이 오른 세금 대부분을 감당해야 하는 '소득역진적 효과'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하루 16개비를 피우는 한국 성인 남성 흡연자 한 명이 내는 담뱃세는 연간 평균 45만5341원이다. 이는 연봉 3500만원 수준의 미혼 남성 근로소득자가 내는 평균 근로소득세 46만7827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의 담뱃세 인상 직접적인 배경인 흡연율 감소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지난 2011년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담뱃값이 한국의 3배 가까이 되지만 흡연율은 비슷하다. 반면 멕시코는 담뱃값이 프랑스의 3분의 일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흡연율은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2004년 국내 담뱃세 인상 직후 닐슨코리아가 분석한 담배가격 탄력성도 -0.1로 나타났다. 이는 가격이 10% 상승하면 수요가 1%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복지예산이 늘고 세금이 걷히지 않아 재정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조세저항이 심한 직접세를 걷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커지니까 술이나 담배 등에 붙는 속칭 ‘죄악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며 "담배세 인상은 국가가 세금을 걷을 때 지켜야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인 '공평과세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