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손학규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손학규 ‘으쓱’
지지율 20%까지 껑충 ‘분석’에, 기타 후보들 ‘초긴장’
난데없이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여의도 정치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고건 전 국무총리의 ‘중도 하차’ 바람을 타고 ‘정계개편의 핵심인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어 그동안 딜레마에 빠져 허욱적대왔던 여권은 고건의 ‘후임’으로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거론하고 있고 그를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러브콜’이 한창이다.
손 전 지사는 그동안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지적을 당내에서, ‘개혁 진보 세력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당밖으로부터 받아왔던 터라 작금의 분위기는 손학규와 여권發 통합신당의 ‘새판짜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하고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선거캠프가 고 전 총리 불출마 선언 이후, 웃음꽃을 피우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다. 손학규 전 지사의 ‘몸값’은 높아졌다. 그를 따라붙던 ‘저평가 우량주’라는 수식어는 옛말이 됐다.
‘100일 민심대장정’을 통해 국민에게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아, 이를 묻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지지율 얘기는 지겹다”고 손사래를 쳤던 머쓱한 행동도 이젠 오래된 얘기다.
여론조사 순위에 울고 웃으며 거기에 목을 매는 현상이 여의도 정가에서는 ‘코메디’라는 말이 있지만, 그가 범여권 후보로 나설 경우 지지율이 급상승할 것이라는 얘기가 슬슬 나오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지율이 20%까지 단숨에 오를 것’이라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턱하니 나왔고, 이는 대선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다른 ‘정치인’들을 긴장케 하고 있다.
만약 손학규 전 지사가 여권과 손을 맞잡을 경우, 그동안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정운찬 전 총장이나 박원순 변호사 등 정치권 밖에 있는 새 인물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여권이 손학규에게 목을 매는 이유는 ‘손학규라는 사람의 상품성’이 한 몫을 하지만, 무엇보다 ‘다급’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는 가장 유력한 범여권 후보였다. 그러나 그가 문을 박차고 나감으로써 빈자리가 생겼고 그 자지를 메울 수 있는 대안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다.
물론 김근태 당의장, 정동영 전 의장 등 우리당 소속 기존 주자들이 고건의 대안으로 떠오르긴 하지만, 사실상 반대의 목소리가 당을 장악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 당 최대 주주격인 두 사람에 대해 “정계개편 논의의 전면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이른바 ‘2선 후퇴론’이 제기돼,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언이 정치권 판세를 뒤흔들기 이전까지 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은 게 바로 그 것. 그래서 개헌론이 잠잠해질 때를 틈타 ‘2선 후퇴론’은 언제든지 재연될 가능성이 열려있다.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여권으로서는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라는 ‘뜻밖의 기회’를 통해 김근태 정동영보다 참신하고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새로운 인물, 즉 손학규 전 지사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고 사실상 그를 ‘마지막 히든카드’로 잡아야 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손학규 ‘히든카드’ 될까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장영달 의원은 지난 18일 전북방송 ‘생방송 사람과 사람’에 출연, “손학규 전 지사는 이제 범여권 통합신당으로 와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이 통합할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으로 여권이 현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제법 진지한 주문을 그에게 던진 셈이다.
손학규 전 지사의 입장에서도 여권의 이 같은 러브콜을 무턱대고 외면할만큼 여유로운 처지는 아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내 중도실용성향인 양형일 의원은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과 ‘다름’을 강조했는데, 그는 “손 전 지사의 행보나 이념, 정책적 노선이 한나라당의 주류적 분위기와 다르다”며 “(열린우리당의) 환경과 풍토만 바꾸면 잘 성장할 수 있는 후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손 전 지사의 경우 이명박 박근혜에 비해 크게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국가보안법, 사학법,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한나라당의 유연한 자세’를 촉구해왔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과 다른 길을 걸어와 “한나라당 성향은 손학규를 지지할 수 없는 토양”이라는 게 여야를 떠나 정치권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정치 전문가들은 “어떤 보수 세력이 손학규를 지지할 수 있겠느냐”,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 더 호감을 보여왔다”면서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내에서 지지율을 더 끌어 올리는 데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손 전 지사가 열린우리당으로 가더라도 ‘외견상 큰 무리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손 전 지사가 여권으로 둥지를 옮길 경우 파괴력도 제법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야파 소속인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손 전 지사가 살아온 과정은 중도개혁 진영에 어울린다”며 “경제 분야에 대한 능력이 경기도지사를 역임하면서 검증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여권 후보로 나설 경우 당장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도 손 전 지사가 여권으로 들어올 경우 당장 정동영과 김근태는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여권행 감행시 지지율 급상승할 듯
문제는 여권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손 전 지사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오락가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한나라당 충남도당이 주최한 신년교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기자들이 ‘제3지대’로 둥지를 옮길 가능성을 묻자 “대통합의 정치를 이루기 위해, 한나라당을 변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권의 희망사항과는 다르게, 일단 ‘움직이지 않겠다’는 반응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이틀 뒤인 19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손 전 지사의 태도는 달라졌다. 그는 “(내가) 한나라당에서 대접을 받지 못해서 자꾸 저쪽(여권)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아니냐”며 박 전 대표, 이 전 서울시장에 비해 당내에서 관심과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 서운함을 표현했다.
이는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뒤 확실히 ‘뜨고 있는’ 자신의 주가를 한나라당이 ‘알아달라’는 일종의 협박(?)으로 풀이되며, 만약 한나라당 내에서 ‘빅3’로 불리고만 있을 뿐 여전히 ‘2강’ 구도에 밀려 ‘찬밥’ 신세가 유지될 경우 모종의 다른 액션을 취할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낳게한다. 상황이 이렇자 여권은 손학규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의 마음을 180도 뒤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선거를 불과 1년 앞둔 상황에서 ‘선거를 위해’ 느닷없이 당적을 바꾸는 행위는 ‘자살행위’라며, 손 전 지사가 여당의 후보로 뛰쳐나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을 틈타 손학규 전 지사의 여권후보 영입설에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와 함께 우려섞인 전망도 연일 쏟아지고 있다.
손학규 영입 ‘반대’ 목소리도 높아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19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것이야 말로 정치적 매춘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손학규가 사라지면 또 누굴 말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며 “손학규씨가 개인적으로 훌륭할 수 있지만 그는 다른 당 예비주자다. 다른 당 대통령 후보를 다른 당에서 지지하는 일만은 제발 하지 말자. 한나라당에조차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 중 한명인 원희룡 의원은 같은 날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에 출연, “한나라당 주자들이 인기가 있으니까 일부 주자를 빼오면 될 것이라는 정치공학적 접근방법으론 (여당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손 전 지사의 여당행은)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매우 적어 보인다”며 “정치인들의 정당 옮기는 행태에 대해 용납 안하는 시대가 됐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은 앞서 18일 “여권이 손 전 지사에게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한나라당에 유리한 지금의 대선 지형을 흔들어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의도”라며 “정치 윤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손 전 지사 진영도 불쾌한 반응을 내비쳤다. 한 측근은 “여권에서 손 전 지사가 중도개혁세력의 대표주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준 것은 좋지만 상대 진영의 후보에 대해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손 전 지사가 유불리에 따라 가볍게 처신해온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은 여권에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발언 이후 정치권이 이처럼 시끄럽다. 주인공인 ‘고건’은 온데간데 없고 엑스트라였던 손학규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3위’인 손 전 지사가 주인공이 된 뒤 발걸음이 갑자기 분주해지고 있다. 여권의 ‘영입대상 1순위’인만큼 상위권 진입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온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