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朴세력 “지역당권은 못 내준다”
이명박측 “돕겠다더니…” 부글부글
한나라당이 당내 경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당내 주류로 자리매김한 이명박 대선후보의 고민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한 당의 화합’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건 만큼 ‘반발세력’도 포용력 있게 안아야 하지만, 이 후보의 당 운영방식에 대해 박 전 대표 측 일부 인사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세력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 일부 인사들은 최근 당직 인선과 시도당위원장 선출 등 이 후보의 당 운영방식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자칫 당이 분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명박 후보는 이 같은 ‘집안싸움’에 적잖이 신경을 쓰는 눈치다. 정치권은 한나라당 시도당위원장 선출문제가 이 후보에게 있어 당 장악력을 가늠하는 시험무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시도당위원장 선출은 지난 7일 이 후보 진영의 남경필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한 경기도당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시도당의 경우 오는 18일~21일 각각 위원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한나라당 시도당위원장 선거가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대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당직 인선 등에서 버림받은(?) 박 전 대표 측이 “시도당위원장까지 모두 내줄 순 없다”며 ‘경선 참여’를 잇따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시ㆍ도당위원장은 총선 공천에 있어 중앙당 공천심사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까닭에 ‘이-박’ 양 진영 인사들이 모두 사활을 걸고 있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문제는 이명박 후보의 태도다. 이 후보의 경우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 ‘반발세력’도 포용한다는 대승적 차원의 ‘원칙론’을 갖고 있지만, 실상 시도당위원장 선출에 대해서는 당내 주류인 자신의 ‘고집’을 좀처럼 꺾을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지난 12일 대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선이 끝나고 이제는 대선이 목적”이라며 “시도당위원장 선출은 합의로 추대할 수 있다고 보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당내에는 누구의 소속도 없다”며 “이제는 누구의 캠프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이는(이런 행위는) 개인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라고 박 전 대표 측 일부 인사들을 겨냥했다. 물론 이 후보는 최근 사태에 ‘직접 대응’은 자제하는 포지션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자신과 당 지도부의 ‘시도당위원장 합의추대 권고’에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이 반기를 들고 잇따라 경선 출마를 선언한 데 대한 불쾌감을 토로한 것으로 당 안팎에선 해석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반기에 이명박 ‘불쾌’
이런 까닭에 박 전 대표 측의 불만도 증폭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한 의원은 “말로만 화합을 한다고 하고 결국 이 후보 측근들이 당을 독식하려는 것 같다”며 “대선 승리를 하려면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의 표도 긁어모아야 하는 데 이 후보가 생각을 편협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합의 추대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강원(심재엽 의원), 경남(김기춘 의원), 전북(김경안 당협위원장) 등 3곳 정도 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천시당에서 이 후보 진영의 조진형 당협위원장, 울산시당에서는 박 전 대표 측 정갑윤 의원 등이 합의추대를 기대하고 있지만 각자 진영의 이해와 요구가 달라 선거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무성 최경환 의원 등 친박 인사들은 최근 회동을 갖고 “우리 측에 배려가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시도당위원장직에 출마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부산 엄호성, 대구 박종근 또는 이해봉, 경북 이인기, 인천 이경재, 충남 이진구 의원, 대전 이재선, 충북 송광호 전 의원 등이 나설 것으로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은 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명박 후보를 돕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박 진영의 ‘대립과 갈등’은 선출직 2명과 임명직 1명이 공석인 당 최고위원직 인선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 후보 당선 이후, 안상수 원내대표, 이방호 사무총장,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이른바 ‘당 3역’으로 선출됐는데, 박 전 대표 측은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친 이명박 인사들. 최고위원직에 최소한 친박 의원 한 명 정도는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당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이 후보의 일방적 의사소통에 따른 당내 갈등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후보는 최근 제1사무부총장 인선에서 측근인 정종복 의원을 고집했는데 강재섭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이 “사무부총장이 멀쩡히 있는데 왜 바꾸느냐. 강 대표는 부총장 인선 계획이 없다”고 맞받아치는 바람에 이 후보 측에서 “사무부총장 인선은 강 대표와 상의할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이명박, 멀쩡한 사무부총장 바꾸기도
이처럼 큰 틀에서 사무총장에 이 후보 측근인 이방호 의원이 임명되고, 내년 총선 공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제1사무부총장에도 정종복 의원 등 이명박 후보 계열의 기용이 유력해짐에 따라, 경선 이후 당 화합이라는 대의명분 속에서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박 전 대표 측의 불만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 후보 경선캠프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박희태 의원은 지난 13일 한 언론을 통해 “(이 후보가) 시도당위원장 선거 문제 등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정권교체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며 당 일각의 분위기를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경선 결과에 대한 불만이 노골적으로 감지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 후보의 심기를 언짢게 하고 있어 이 후보로선 반드시 시도당위원장 문제에 따른 ‘갈등 봉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표의 ‘세력화’를 사전에 봉쇄해야 한다는 절박감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현재 물밑 행보, 이른바 ‘비공개 행보’를 지속하고 있는 박 전 대표는 아직까지 정권교체를 위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다.
친박 주요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박 전 대표 당내 위상 인정’ ‘박 전 대표 중심의 단합’ 등 강경발언을 통해 이 후보를 압박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이 후보 측에서 박 전 대표의 위상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당의 불협화음, 그리고 이로 인한 당 분열 가능성 때문에 시도당위원장 선출 문제에서 이 후보가 한 발짝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 후보가 ‘강수’를 두기는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도 이 후보 측에 설득력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 후보 ‘강수’ 두기엔 무리 뒤따를 듯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후보 측은 자신들에 대한 ‘반발 세력’이 박 전 대표 측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형상, 경상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박 전 대표 측 의원들의 ‘세력화’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박 전 대표는 당내 세력화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게 이 후보 측이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이 후보 측은 특히 박 전 대표 측 일부 인사들이 경선 패배에 따른 시빗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 후보 경선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진수희 의원은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일부 박 전 대표 측 의원들이 당직 인사 등을 두고 ‘친이(親李) 독식’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독식했다는 것이냐”며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의 일거일동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셈이다.
이 후보 측 한 관계자는 “경선 라이벌이었던 박 전 대표가 경선결과에 승복한다고 했는데, 이 후보를 돕기는커녕, 내년 총선을 겨냥해 세력화 행보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며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이 후보가 경선 이후 ‘이쪽 캠프냐, 저쪽 캠프냐’를 떠나서 능력 위주로 광범위한 탕평인사를 한다고 공언해 왔으나 사실상 이 후보 측 인사가 독식하고 있다면서 시빗거리는 이 후보 측이 먼저 제공한 것이라며 자신들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경선 이후 또 다시 당이 분열로 치닫고 있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예상했던 대로 경선 이후 당권을 둘러싼 논란이 가속화되면서 한나라당에 ‘빨간 불’이 켜졌다. 경선 초반부터 ‘대세론’ 전략을 펼치며 이변 없이 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명박 후보로서는 안팎에서 악재가 돌출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 후보의 당내 ‘홀로서기’가 난항을 겪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그러나 여전히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