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치솟는 물가와 고용불안이 겹치면서 올해 1월 ‘경제고통지수(Economic Misery Index)’가 같은 달 기준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반영해 산출하는 경제고통지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이 그만큼 크고 국민의 삶이 그만큼 팍팍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1월은 고등·대학교 졸업생들이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시기이고, 겨울철에는 건설 현장 일감도 줄어 국민이 체감하는 고용 경기가 특히 다른 달보다 실업률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만, 올해는 고물가까지 겹쳐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고통이 더 커졌다.
미국 예일대 교수를 지낸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ur Okun)’이 고안한 ‘경제고통지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삶의 질을 계량화해서(경제고통지수 = 소비자물가 상승률 + 실업률) 수치로 나타낸 지표인데, 우리나라의 올해 1월 ‘경제고통지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5.2%와 실업률 3.6%를 더한 8.8로 1월 기준으로 통계방식이 바뀐 1999년 이후 24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해 최악 긴축의 고통으로 그 어느 때 보다 춥고도 험해 참혹할 따름이다.
지난달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로, 5% 이상 고물가가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1월 실업률은 1년 전보다 조금 내린 3.6%로 나타났지만 그사이 급등한 물가 탓에 ‘경제고통지수’는 1년 전보다 높아진 8.8%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 2월 2일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1(2020=100)로 1년 전보다 5.2% 상승했다. 전달보다 0.2%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물가 상승 폭이 전달보다 확대된 건 지난해 10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5.2%)은 지난해 5월 5.4%를 기록한 뒤 9개월째 5%대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한편 통계청이 지난 2월 15일 발표한 ‘2023년 1월 고용동향’을 보면 2023년 1월 15세 이상 취업자는 2,736만 3,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41만1,000명 증가(1.5%)하였고, 고용률은 60.3%로 전년 동월 대비 0.7%포인트 상승하였지만, 2023년 1월 실업자는 102만 4,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11만9,000명(-10.4%) 감소 감소했지만, 실업률은 3.6%로 전년 동월 대비 0.5%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호황일 때 물가가 올라가도 실업률은 오히려 낮아지고, 불황일 때 실업률이 높아져도 물가는 하락하는 등 물가와 실업률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두 수치를 더한 ‘경제고통지수’가 급격히 오르는 일은 흔히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이라는 이례적 대외변수가 중첩된 탓에 작금의 한국 경제는 고물가와 고용불안을 동시에 겪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특히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공공요금 상승 때문에 많은 국민이 춥고도 험한 고통의 겨울을 나고 있다. 일반 가계, 자영업자 가릴 것 없이 갑절로 치솟은 전기·가스요금에 깊은 한숨을 몰아쉰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목욕업이나 숙박업종에선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실업자 수도 1년 만에 다시 100만 명을 넘어 102만4,000명에 달했다. 청년층(15∼29세) 실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5,000명 감소하였고, 청년실업률은 0.1%포인트 하락하였으며, 60세 미만 제조업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2만6,000명이나 줄어들었다. 취업자는 작년 같은 달 대비 증가 폭이 감소하는 추세인데, 연간 취업자 증가 규모가 지난해 81만6,000명의 약 8분의 1인 10만 명에 그칠 것이란 정부의 전망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리게 한다.
한꺼번에 들이닥쳐 동시에 진행되는 고물가와 일자리 불안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의 불길한 신호로 그만큼 더 바짝 문턱에 다가섰다는 반갑지 않은 표현으로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만큼 경기 한파가 혹독하다는 의미가 분명하다. 지난달 한국 소비자들이 앞으로 1년간의 소비자물가 전망을 보여주는 ‘기대 인플레이션’마저도 석 달 만에 다시 4% 선을 돌파했다. 공공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뤄놨지만 그사이 경제가 획기적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건설경기까지 얼어붙어 고용도 금세 나아지길 기대하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물가는 1년 전보다 28.3% 급등해 별도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시가스는 36.2%, 지역 난방비는 34.0%, 전기료는 29.5%, 상수도료는 4.0% 올랐다. 처분가능소득의 대부분을 필수 생계비로 쓰는 저소득층으로선 난방 등 삶의 질에 직결되는 소비를 줄이거나 적자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언 가슴에 찬바람만 거센 혹독한 고난의 봄이 오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상반기 중 동결하기로 공공요금도 관련 공기업의 적자가 폭증하고 있어 전기·가스요금은 올봄에 추가로 인상될 전망이다. 이미 한계선을 넘어선 서민들로선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 닥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돌보고 지원하는 데 가능한 모든 자원과 국가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