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지난 4월 5일 오전 9시 45분께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붕괴 사고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후진국 체질에 매몰된 채 아직도 ‘후진국형 인재’에 노출되어 귀중한 인명이 위협받고 있음을 새삼 일깨운다. 천만다행히 차로는 붕괴하지 않았지만, 한쪽 보행로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5m 아래 탄천 보행로 쪽으로 추락했다. 마침 그 위를 걷던 시민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이렇듯 정해진 공법을 지키지 않는 부실시공과 형식적인 점검으로 실종된 안전관리 등 고질적인 안전불감증 만연은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라고 만장일치로 결의한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개선되지 않고 아직도 이런 후진국형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어 참으로 경악스럽고 개탄스럽다.
경기도 성남시 탄천을 가로지르는 정자교는 1993년 완공된 왕복 6차로 길이 108m 교량이다. 탄천 주변의 아파트 대단지와 상가 밀집 지역을 연결해 평소에도 통행량이 많은 다리다. 다리 밑을 통과하는 산책로도 평소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사고 당일 비가 오지 않았다면 평소 유동 인구를 헤아려 볼 때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어 충격을 더 하고 있다. 특히, 붕괴한 보행로 구간은 다리 상판에 매달리듯 설치된 구조이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안전 점검이 필요했지만 그런 조처는커녕, 오히려 안전 점검을 아예 결략(缺略)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비등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정자교 정기안전점검 결과표’의 점검 항목에 아예 빠져 있다는 것은 이를 방증(傍證)한다.
그동안 교량 붕괴 사고는 돌격성장과 압축성장을 일궈오는 과정에서 성장지상주의 경제 논리에 밀린 안전의식 결여가 빚은 암울한 역사의 소산물이었다. 양적인 팽창은 가져왔지만, 질적인 개선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반증(反證)이다. 그동안 서울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1970. 4. 18. │ 사망 33명, 부상 40명), 충북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1993. 1. 7. │ 사망 28명, 부상 48명), 서울 성수대교 붕괴(1994. 10. 21. │ 사망 32명, 부상 17명),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1995. 6. 29. │ 사망 502명, 부상 937명), 대구 지하철공사장 붕괴(2000. 1. 22. │ 사망 3명, 부상 1명), 경기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2014. 10. 17. │ 사망 16명, 부상 11명)를 비롯한 많은 붕괴 사고들은 다양한 교훈과 시사점을 남겼지만, 아직도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지난 1월 3일에도 서울 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도림동과 신도림역을 잇는 ‘도림보도육교’가 엿가락처럼 휘어 주저앉았다. 준공된 지 6년밖에 안 된 다리로 지난해 10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 진행된 점검에서는 ‘A등급(이상 없음)’을 받았다. 이번에 무너진 정자교도 지난해 11월 점검에서‘B등급(양호)’ 판정을 받았다. 안전 점검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웅변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1995년 1월 5일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현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1995년 4월 19일 시설안전기술공단(현 국토안전관리원)이 출범했다. 1994년 1월 1일부터 50억 원 이상의 공공 건설공사에 대해 공사 단계부터의 책임감리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도 평택국제대교 상판 4개 연쇄 붕괴(2017. 8. 26. │ 인명피해 없음), 광주 학동 건물철거공사장 붕괴 사고(2021. 6. 9. │ 사망 9명, 부상 8명),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아파트 공사장 붕괴 사고(2022. 1. 11. │ 사망 6명, 부상 1명) 등이 이어졌다. 우리 사회엔 해이해진 안전의식에 기인한‘안전불감증’과 괜찮을 거라는 ‘설마의식’ 그리고 정해진 공법을 철저히 이행하지 않는 ‘적당주의’가 아직도 만연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경찰은 이번 사고 전담팀을 꾸리고 소방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과 함께 현장 합동 감식을 벌여 교량 붕괴 원인을 찾기로 했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빈틈없는 재발방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만 한다. 지난해 1월 26일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중대시민재해 1호 사례가 될지도 주목되는 가운데 급거 성남시는 지난 4월 6일 정자교 인근 주요 교량에 대한 정밀진단에 나섰다. 서울시도 정자교와 유사한 구조의 교량에 대해 긴급 안전 점검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망우보뢰(亡牛補牢 │ 소 잃고 외양간 고침)이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 죽은 다음 약을 구함)인 셈이다. 이제라도 또 다른 사각지대는 없는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준공된 지 30년이 경과 한 노후화한 분당 신도시 기반 시설 전반에 대한 일제 안전 점검이 필요하다. 1990년대 초반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1기 신도시에 건설된 시설물 전반의 안전성 여부를 재점검할 때가 온 것이다. 차제에 1기 신도시의 기반 시설 노후화로 인한 위험 요소를 일소하는 계기로 삼고 교량·도로·상수도관·가스관 등 기반 시설에 대한 총체적 안전 점검과 보수·보강, 재정비를 서둘러야만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