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곧 귀국···여권서도 사퇴 요구 빗발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회칼 테러' 발언을 해 논란이 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사의를 수용했다. 대통령실은 당초 '거취 결단'까진 필요 없는 사안이라고 봤지만, 총선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자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또 다른 '총선 리스크'인 이종섭 주호주대사에 대한 조치도 이뤄질지 주목된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윤 대통령이 황 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20일 알렸다. 지난 14일 황 수석이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1980년대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과 5·18 민주화운동 배후 의혹 등을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설에 오른 지 엿새 만이다. 황 수석이 언제 윤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당초 대통령실은 황 수석의 발언이 부적절하긴 했으나, 사퇴까지 이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은 지난 18일 낸 입장문에서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이라고 했다. 황 수석에 대한 경질 요구를 에둘러 거부한 것으로 읽혔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20여일 앞둔 시점에서 중도층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지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대사와 황 수석 문제가 논란이 된 후인 지난 15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서울 지지율은 전주 대비 15%p 하락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중도 표심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여당 수도권 출마자들이 두 사람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한 것도 황 수석의 거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황 수석 건이 '사퇴'로 일단락됨에 따라, 이제 시선은 이 대사에게로 향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실이 '이종섭·황상무' 리스크에 따른 민심 이반을 확인한 만큼, 이 대사에 대한 조치도 조만간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조치 수위로는 귀국 지시부터 임명 철회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 시절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는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대상에 오른 상황에서 호주 대사로 임명돼 논란이 됐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실이 이종섭의 도주를 도왔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앞서 대통령실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일 호주와의 안보협력과 호주에 대한 대규모 방산 수출에 비추어 적임자를 발탁한 인사"라며 이 대사 임명 철회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여론 악화에 총선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여당에서도 이 대사의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경기 권역 선대위원장인 김학용(경기 안성)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나와 '이종섭·황상무 논란'이 민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싸늘하게 식고 있다"면서 "(이 대사) 본인으로서는 안타깝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자진 사퇴하고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대사는) 공수처의 즉각적인 소환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시급히 이 대사가 귀국할 필요가 있다"며 "정치적인 위급함에 비춰본다면 입국하는 것이 맞고, 이와 같은 것들이 민심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이 대사는 곧 자진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5일부터 우리나라의 주요 방산협력국 주재 공관장들이 참석하는 공관장 회의가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경기 안양에서 가진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이 대사는 곧 귀국한다"며 "총선을 앞에 두고 절실하게 민심에 반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사는 귀국 후 공수처에 신속한 조사를 촉구하는 입장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부담을 덜기 위한 사의 표명 등의 행보도 있을 수 있다. 이 대사는 전날 "언제든 출석해 조사에 응하고 적극 협조하겠다"며 공수처에 조사기일 지정 촉구서를 제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