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 산림과학자의 집념과 끈기가 밝혀낸 아픈 역사의 민낯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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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한 산림과학자의 집념과 끈기가 밝혀낸 아픈 역사의 민낯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이다』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4.04.26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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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 곳곳 전나무 노거수에 담긴 역사적 진실 추적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우리 땅에 있는 전나무 노거수(老巨樹)들의 대부분이 일제에 의해 심어졌다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됐다. 북랩은 국립산림과학원 출신의 산림과학자가 전국 곳곳에 있는 전나무 노거수들이 일제의 잔재임을 고찰한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이다>를 펴냈다.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이다’, 박찬우 지음, 202쪽, <br>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의 신목이다’, 박찬우 지음, 202쪽,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환경은 전나무가 자생할 만한 생육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1980년부터 약 40여 년간 산림과학을 연구하고 강의해온 저자는 우리 남부지방 곳곳의 사찰에 전나무 노거수들이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이에 대한불교 조계종 24개 교구 본사와 조선 왕릉, 대관령 산신당,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통영 충렬사, 권율 장군의 묘소 및 각지의 공공시설을 답사하며 조사했다.

전나무가 가슴높이 직경 60~100cm 정도로 자라는 데는 80년에서 100년 이상이 걸린다. 저자가 답사한 각지의 전나무들 대다수의 크기가 이 가슴높이 직경에 해당했다.

즉, 이 전나무들이 사람에 의해 심어진 것이라면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중반까지 일제가 심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가슴높이 직경 60~69cm급의 나무가 월등히 많은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중의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전나무를 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26년 일본의 쇼와(昭和) 왕자가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원(현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기념식수 행사에서 일본전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을 비롯해 다양한 식재 기록과 사료(史料)가 이에 대한 근거다. 또한 그 시기에 전나무 식재에 참여했던 이들 중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게다가 이 전나무들이 보통 나무가 아니라 신목(神木)의 의미로 심어졌다는 주장은 더욱 놀랍다. 일본의 나가노(長野)현 스와(諏訪)대사 홈페이지에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전설 속의 신공왕후가 삼한(三韓)을 정벌할 때 스와대사 제신(祭神)이 도움을 줬다고 안내하고 있다.

대사란 규모가 큰 신사를 일컫는 말로, 스와대사에는 전나무 신주(神柱)가 있다. 본래 신주용재(神柱用材)는 삼나무와 편백 등이었으나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가 이를 조선 땅에도 심을 수 있는 전나무로 바꾸고, 당시 조선에 있던 일본인들에게도 신공왕후 삼한정벌 당시와 같은 신덕(神德)이 내려지기를 바라며 우리 땅에 전나무들을 심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인 대다수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실태를 지적하며, 일본과의 진정한 상생과 동반을 위해서는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 박찬우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성장했으며, 1977년 강원대 산림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및 일본 니이가타(新潟)대 대학원에서 수학해 1993년 환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산림경영연구과장, 기획과장, 산림복지연구과장으로 재직했다. 2013년 국립산림과학원 퇴직 후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자문위원, 강원대 산림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산림기술인회 교육원 전임교수, 한국산림복지진흥원 연구센터 팀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 국립산림과학원 재직 중 우수공무원으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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