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금지, 인사 검증 과정서 알 수 없어"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한 것에 대해 사실상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수사기관에 고발됐다는 것이 인사를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 임명 역시 직무 적격성을 검토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앞둔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이 전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한 것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작년 9월경에 고발됐다는 것은 기사를 보고 알았지만, 공수처 소환이 진행됐다면 저희도 (임명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했을 텐데 공수처에는 사실 굉장히 많은 사건이 고발돼 있다"며 "어디 고발됐다는 것만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아마 공직 인사를 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환을 하지 않은 사람을 출국금지를 거는 경우도 잘 없고, 출국금지를 걸면 반드시 불러야 한다"며 "소환도 하지 않고 출금을 한 달씩 걸고 또 두 번을 계속 연장하면서도 소환하지 않았다는 건 저도 오랜 기간 수사업무를 해 왔지만 저도 좀 이해하기가 어렵다"면서 공수처의 수사 미흡을 지적했다.
출국금지 여부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조처)는 인사 검증을 하는 정부 기관에서도 전혀 알 수 없다. 보안 사항이고 그게 유출되면 형사처벌 대상"이라며 출국금지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 전 장관 임명이 적합한 인사였다는 점도 피력했다. 윤 대통령은 "호주는 미국을 제외하고 우리가 유일하게 '외교·국방 2+2 회담'을 하는 나라다. 그만큼 우리 경제와 안보의 깊은 관련이 있는 국가"라며 "이종섭 장관은 재직 중에 방산 수출을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양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 전 장관에 대해 법무부의 출국금지를 해제하고 출국시키면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과 이 전 장관은 공수처가 소환 조사할 경우 귀국하겠다며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이 전 장관은 지난 3월 29일 외교부에 사의를 표명했고, 윤 대통령은 같은 날 외교부 보고를 받은 뒤 이를 재가했다.
대통령실은 이 과정에서 홈페이지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통해 이 전 장관 임명 과정에서 논란이 된 항목들에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15일 홈페이지 게시글에 '이종섭 대사의 출국금지가 정당한 조치인가'에 대해서는 "출국금지는 조사 지연에 이은 부당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출국금지를 대통령실이 몰랐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이 알았으면 더 큰 문제"라고 전했다.
당초 '이종섭 사태' 등 대통령실발 리스크가 4·10 총선 패배에 영향을 미치면서 윤 대통령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기대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기자회견에서 기존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해당 논란을 둘러싼 정치권 갈등은 한층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야당은 이를 계기로 '채 상병 특검법'에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 2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된 상태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시 재표결에 부친다는 계획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집중호우 당시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채 상병 순직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이 책임이 있다는 수사 결과를 축소하고 재검토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이다. 이에 공수처는 올해 1월 이 전 장관과 유재은 법무관리관, 김동혁 검찰단장 등 주요 피의자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를 내린 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