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수용 가능한 '협치형 총리' 인선 관건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총선 참패 직후 사의를 표명했던 한덕수 국무총리가 한 달 반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후임자 인선난이 '총리 교체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신임 총리 지명이 늦어지면서 한 총리 유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인사 교체를 통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쇄신 계획이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정치에서 '총리 교체'는 대통령의 국정 쇄신 의지를 국민에게 가장 확실하게 각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이에 역대 대통령들은 진영을 막론하고 정권이 위기를 맞았을 때 총리 교체 카드를 꺼내 들곤 했다. 2021년 4월 민주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부겸 전 총리를,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에 지지율이 출렁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완구 전 총리를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여당이 4·10 총선에서 참패를 당한 직후, 한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인선난으로 후임 총리 지명이 늦어지면서 정부·여당이 기대했던 국정 쇄신 효과는 바라기 어려워졌다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한 총리 유임설이 거론되는 가장 큰 이유는 후임 인선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22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서, 윤 대통령이 지명하는 총리 후보는 험난한 국회 인준을 거쳐야 한다. 현시점에서 야당 동의를 얻기 위해선 다음 총리는 윤 대통령의 의중만이 아닌, 야당의 입맛도 어느 정도는 고려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협치형 총리'를 내세워야 하는데, 윤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평가다. 앞서 윤 대통령은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후보 검토설'로 보수 진영에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엔 윤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어중간한 협치형 총리를 내세웠다간 국회 인준도 어려울뿐더러, 보수 진영 내에서 윤 대통령의 입지가 크게 쪼그라들 수 있다.
후임 총리 인선이 표류를 거듭하면서 윤 대통령이 '인적 쇄신'의 골든타임을 허비해 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선 참패 수용 차원으로 총리 교체를 고려했다면 조속히 후임을 인선해야 했는데, 실기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총리 교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총선 참패 뒤 한 총리를 비롯해 안보실을 제외한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참모 전원이 사표를 냈으나, 현재까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만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매일일보>에 "총리 교체는 국정 쇄신의 상징과 같다"며 "임기가 3년이나 남았는데, 지지율은 30%대 횡보다. 최소한의 국정 동력 확보를 위해선 (총리 등 인사들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