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비롯 건축·공학적 접근 등 삼박자 맞아야 실현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철도 지하화를 위한 정부의 보폭이 넓어진 가운데 업계와 전문가들은 사업 현실성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극소수인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예상 공사비 대비 사업성이 대체로 낮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에서 민자 유치 위주의 사업 추진을 전제한 만큼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실제 착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10일 정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철도 지하화를 임기 내 역점 사업으로 못 박고 공약 이행에 나서고 있다. 연초 민생 토론회에서 "민간투자를 통해 철도 지하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특별법은 여야 합의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올 연말까지 전국 지자체 제안을 평가해 1차 선도지구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후 내년 말까지 지하화 통합개발 대상 노선을 구체적으로 확정한 뒤 철도지하화 종합계획을 내놓을 방침이다.
건설업계에선 초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입이 예상되는 만큼 환영한다는 반응이지만 정부의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가 발표한 재원 조달 방식은 국가철도공단 등 공공기관이 채권을 발행한 후 민간의 상부 부지 투자를 통해 회수하는 형식인데, 사업성을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도심 철로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 유치가 가능한 쓸만한 부지가 예상보다 적을 것"이라며 "부동산 개발은 투자비용을 상쇄할 수요 예측이 절대적이지만 기존 상부 철로 폭과 입지 등을 보면 여러 변수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서울시 용역 결과를 보면 지하철 1·2호선 구간과 국철 경인선·경부선·경의선 등 86.4㎞ 구간을 지하화하는 데 38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업계에선 해당 용역이 10여 년 전에 나왔다는 점과 공사비 인상 폭 등을 감안할 때 수도권 5곳 등 전국 주요 도심 철로 총 188.8㎞ 지하화에만 62조원 가량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시다발적인 철도지하화는 법·정책 수립뿐 아니라 확실한 사업성 보장 및 건축·공학적 접근 등 삼박자가 맞아야 실현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철도 지하화를 추진 중인 지역들을 모두 진행하는 건 사업성이 없고 현실성도 떨어진다"며 "지가가 높은 주요 도심지에선 가능하겠지만 지하화 후 상부에 남는 공간이 적으면 민자 유치 가능성이 떨어지고 접근성과 주변 도로 등 인프라 구축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서울 시내 용산기지창도 사업비 등 여러 문제로 지하화를 못 하는 게 현실"이라며 "철도는 도로보다 공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도 '철도지하화 사업, 특별법 만으로는 부족' 보고서에서 "철도지하화 특별법으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법적 요소뿐 아니라 재정·기술·환경·사회적 요소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를 위한 대안으로 "사업으로 인한 이익을 향유함에도 사업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일대 토지 소유자들로부터 개발이익을 적절히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