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돼…대응 매뉴얼·안전기준 無
매일일보 = 서영준 기자 |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 K-배터리가 경기도 화성시 리튬 배터리 공장 참사로 금속 화재 안전 대책조차 갖추지 못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7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숨진 사망자 가운데 현재까지 17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미확인 사망자는 6명 남았다. 8명의 부상자 중 2명은 여전히 위독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경상자 6명 중 4명도 아직 퇴원하지 못했다. 사망자 23명 중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으로 한국인 가운데 중국 출신 귀화자 1명이 포함됐다.
이번 화재는 단일 사고로는 가장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생명을 잃은 사고로 기록됐다. 인명 피해가 커진 원인으로는 리튬 전지 화재를 예방하거나 조기 진압할 장치가 부재했다는 점이 꼽힌다. 회사 측의 안전 대책도 소홀했다. 이번 사고 이틀 전에도 불량 배터리에서 불이 났지만 작업자가 진화한 뒤 생산을 재개했고 소방당국엔 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리튬 배터리는 대부분 한번 사용된 뒤 재충전 없이 폐기되는 일차전지로, 이차전지인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화재 위험이 작은 것으로 평가된다. '일반화학물질'로 분류돼 별도 대응 매뉴얼이나 안전기준이 없다. 또 리튬과 같은 금속 화재는 소방법상 화재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전용 소화기 개발조차 어려운 데다, 리튬 폭발의 전조 현상인 가스 누출을 감지해 경보를 울리거나 차단할 수 있는 시설도 거의 보급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리튬 배터리는 일단 불이 나면 연쇄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반응성이 높은 금속에다, 완충된 상태로 제조되기 때문에 화재 시 위험성은 더 크다. 이번 화재도 1개의 리튬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이 다른 배터리로 옮겨붙으면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고 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리튬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안일함이 최악의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약 23%로 중국에 이은 2위의 배터리 강국이다. 휴대전화, 노트북, 친환경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우리 생활 곳곳에 배터리가 들어와있다. 주요 수출품이자 생활용품임에도 정작 안전에 관해서는 '후진국'인 셈이었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배터리 산업 현장의 안전관리 시스템 점검에 나섰다. 산업부는 유사 사업장에 대한 현장 안전점검 및 상시 모니터링을 위해 산업부 본부 및 국가기술표준원, 소방청, 배터리산업협회, 전기안전공사 등 유관기관과 함께 '배터리 산업 현장 안전점검 TF'를 구축 운영할 예정이다.
현장 점검 대상으로는 리튬 1차전지 제조시설 뿐만 아니라 리튬 2차전지 제조시설, 리튬 배터리 ESS 제조시설, 사용후 배터리 보관시설 등 리튬 배터리 관련 국내 핵심 사업장들을 포함할 방침이다. 아울러 여름철 풍수해 등에 대비해 전기, 가스, 산업단지 등 산업 인프라 전반에 대한 종합안전점검도 즉시 실시할 계획이다.
한편 경찰은 지난 26일 경기도 화성 리튬 1차전지 아리셀 공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업체 관계자 등 5명을 입건한 지 하루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