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공익위원 손에 결정···편향 논란 거듭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내년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놓고 노사가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올해도 표결에 부쳐졌다. 2010년 이후 노사 합의에 따른 최저임금 관련 결정이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들의 편향성 논란도 정권마다 제기되면서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무용론이 또 다시 제기된다.
3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7차 최임위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안)이 부결됐다. 산업·노동계 안팎에선 양측 견해차가 뚜렷한 만큼 업종별 차등뿐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도 결국 노사 합의 불발 후 공익위원을 포함한 표결로 결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법정 기한(6월 27일)은 이미 지났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시행된 이후 총 37차례의 심의 가운데 법정 기한을 지킨 경우는 단 9차례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경우는 7차례에 그쳤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는 경제성장률을 비롯해 수출·내수경기, 산업별 업황, 물가상승률 등 최저임금 수준에 있어 사용자와 근로자의 주장에 유리하게 작용할 만한 지표들이 한층 다양해졌고, 양측 주장에 동시에 힘이 실린 결과로 풀이된다.
노사 간 팽팽한 견해차로 최종 표 대결로 이어지게 될 공산이 커지면서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이듬해 최저임금 수준의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은 노동계가, 사용자위원은 경영계에서 추천받아 선임한다. 공익위원은 최저임금법 시행령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정부가 선정해 노동부 장관이 제청한 후 대통령이 위촉한다.
문제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 선정 과정과 그들이 제시하는 중재안 산출 방식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공익위원을 선임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고, 별다른 체계 없이 국정 기조에 따라 인상률이 크게 달라진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현재 최임위에 있는 공익위원 9명도 윤석열 정부가 추천한 인사라는 점을 노동계는 우려하고 있다. 전날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에 관한 노사 합의 불발 후 표결을 앞두고 일부 민주노총 추천 위원들이 투표용지를 찢고 의사봉을 뺏는 등 물리력을 행사한 것도 이 같은 우려가 불러온 볼썽사나운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최임위 구성원 면면을 다양화하고 공익위원 선정 문제는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사 대립을 줄이려면 최임위 구성원들의 직업과 연령대 등을 더욱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구체적인 임금결정 공식이 필요하고, 중립성을 갖춘 공익위원 선정을 위한 법률 제정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내년에도 업종 구분 없는 단일 최저임금이 적용이 확정된 가운데 이번에는 이전 문재인 정부의 숙원이자 상징성이 큰 최저시급 1만원을 넘어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임위는 4일 예정된 8차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 논의에 들어갈 방침이다.
다만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 표결 과정에서 발생한 근로자 측 위원들의 과격 행동과 사용자위원들의 집단 반발은 향후 일정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사용자 위원들은 3일 입장문에서 "2025년 최저임금의 사업종류별 구분 적용 결정과정에서 벌어진 일부 근로자위원들의 무법적인 행위는 민주적 회의체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행태"라며 "이를 방관한 위원장의 회의 진행도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실제로 사용자 위원들은 4일 회의에도 불참할 것을 예고하는 등 강력대응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