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여건 하락 감안 신속해결이 답… 법적 중재장치 마련해야
매일일보 = 김수현 기자 | 최근 늘어나는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시행사와 건설사들이 할인분양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에 입주민끼리는 물론 입주민들과 시행·시공사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나, 중재 시스템 및 법안이 따로 없어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21일 국토교통부 5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2129가구로 전월 대비 0.2% 늘었다. 지방 미분양 주택은 5만7368가구로 약 79.5%를 차지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이 발표한 '7월 미분양 물량 전망지수'를 보면 110.3으로 나타났다. 전달과 동일한 수치로, 지난 5월 100에 비해 10.3포인트 상승했다. 해당 지수는 기준치인 100을 넘으면 미분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악성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후 미분양 물량은 1만3230가구로 전월 대비 2.0% 늘었다. 금리인하처럼 뚜렷한 모멘텀 없이는 미분양이 해결될 기미가 없는 만큼 할인분양에 따른 갈등도 조만간 지속될 전망이다.
현재 지역 미분양 아파트에 입주해 있는 기존 입주민들은 차액 배상 등의 특약이 없을 경우 법적으로 소급 계약 및 손해배상을 받아낼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이들과 시행·시공사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되더라도 법적으로 딱히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법률 전문가 A씨는 “민법상 주택 판매는 소유권 이전과 관련된 계약이기 때문에, 재산권을 존중하는 현재 법체계에서는 이를 법적으로 막거나 기존 입주민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해 차액을 받아낼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라고 했다.
더욱이 할인분양을 정당한 미분양 처리 방법으로 인정하는 몇몇 판례들이 이미 있기 때문에 기존 입주민들의 시름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서울동부지방법원과 2015년 울산지방법원 등에서 선고된 판례에 따르면 시행사는 부동산 경기 변동 등으로 수익을 보존하고 손실 최소화를 위해 분양가를 변경할 자유가 있고, 할인분양이 해당 아파트의 재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기존 입주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입주민들이 법적인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해 사적인 폭력을 동원할 경우 사실상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 있어 사건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폭력이 오히려 더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시행·시공사들과 원만한 합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할인분양을 할 경우 건설사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고 주민과의 갈등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며 “할인분양 시행 후 기존 입주민에게 소급적용을 할 경우 건설사나 시행사는 상당한 손해를 입게 된다”고 했다.
그는 “최근 정부에서 임대 주택 매입과 CR리츠 투입에 나서고 있는데 해당 자금 일부를 준공 후 미분양 물량에 투입한다면 건설사들의 부담도 줄어들고 기존 정책 목표도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입주민간 혹은 입주민과 시행·시공사간 갈등이 불거질 시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 원만하게 중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관련 사례로 최근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공사비 증액으로 인한 갈등이 커지자 서울시는 중재를 이끌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주민과 시공사간 합의를 이끌어 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기존 주민들 입장에서는 아파트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할인분양을 반대하지만, 미분양 물량이 계속 남아 있는 경우에도 아파트 가치는 하락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할인분양에 따른 갈등 발생 시 무조건 빠른 해결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지자체가 나서서 수분양자들의 재산세 등을 1~2년 정도 감면하거나, 건설사들이 단지 가치가 상승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센터나 조경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등의 중재안을 제시해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