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부터 임시저장시설 순차적으로 포화상태
여전히 국회 문턱에…여야 '저장용량' 입장 그대로
매일일보 = 서영준 기자 |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 24조원대로 추산되는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동안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위기에 놓였던 K-원전이 원전 본거지인 유럽에서 원전 종주국 프랑스를 제치고 수주를 따내며 본격적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쏜 것이다.
그러나 원전 업계에선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리 특별법이 여전히 국회에서 공회전하는 탓에 향후 글로벌 원전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2022년 친환경 투자 기준인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원전 산업을 추가하면서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는 처분장 마련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번 체코 수주의 경우 금융지원을 체코에서 전담했기 때문에 EU 택소노미에 따른 영향은 없었다. 다만 향후 다른 EU 국가에 수출할 때 이를 지키지 못하면 대출 지원 등 해외 금융 측면에서 한국의 입지가 불리해질 수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도 최근 "원전 상위 10개국 중 방폐장 부지 선정에 착수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과 인도뿐"이라며 "방폐장을 마련하지 못하면 유럽 원전 수출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지금은 미봉책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뒀는데, 2030년부터는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고리 원전 등 순차적으로 포화 상태를 맞는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향후 원전 출력을 줄이거나 운영을 아예 중단할 수 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고준위방폐장은 당장 건설을 시작해도 완공까지 30년 넘게 소요되는 만큼 원전 수출뿐 아니라 국내 전력 수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하루빨리 결정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현재 고준위특별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1대 국회에서 3건의 고준위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저장시설 용량을 놓고 야당이 반대하면서 끝내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여당이 4건 발의했지만 여야 정쟁에 휘말려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하지 못했다. 그나마 앞서 꾸준히 공론화를 진행해온 덕분에 여야가 법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고, 지난 13일에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준위특별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여야 사이의 쟁점은 부지내저장시설의 저장용량이다. 정부·여당은 부지 내 저장시설의 저장용량을 원전의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료의 양 이내로 제한하되 별도의 심의·의결을 거치면 저장용량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부지 내 저장시설의 저장용량이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계속 운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김 의원은 원전 정책 확대에 반대하며 원전의 최초 설계 수명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김 의원은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는 원전에 대한 찬반을 떠나 원전을 사용한 우리 세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숙제라는 책임감에 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다만 "원전 확대 일변도인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며 "부지내 저장시설 건설은 원전의 당초 설계수명 이내로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