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김기현 연속 만남···당 장악력 확보 움직임 분석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한 달이 지났음에도 당 장악에 한계를 드러내는 모습이다. 여권 안팎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는 한 대표의 행보가 당내 주류인 친윤석열(친윤)계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빈약한 당 장악력에 한 대표가 추진하는 '제3자 채상병 특검법', '의대 증원 유예' 등도 당내에서 힘을 얻지 못하는 형국이다.
1일 여권에 따르면 7·23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에 선출된 한 대표는 취임한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실권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현안에 대한 당대표의 입장이 명확한데도 의원들이 이에 반하는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지면서다.
여당 의원들이 한 대표 뜻을 거스르는 대표적 현안에는 '제3자 채상병 특검법'과 '의대 증원 유예'가 있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 국면에서 국민의 '의구심 해소'를 위해 공정한 제3자가 추천하는 특검법 추진을 약속한 바 있다. 또 출구 없는 의정갈등 해소 방안으로 최근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3자 특검법의 경우에는 당 주류인 친윤계의 반발에 언급한 지 두 달이 지났음에도 '첫 발(법안 발의)'도 떼지 못했다. 한 대표는 지난달 26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결과를 보고 특검 여부를 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라며 친윤계 주장을 수용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의대 증원 유예 문제를 두고는 '한동훈 지도부' 일원인 추경호 원내대표와도 이견을 보였다. 추 원내대표는 대통령실과 한 대표가 '2026년도 의대 증원 유예안'을 두고 마찰을 빚던 지난달 28일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증원) 추진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당도 함께할 생각"이라며 사실상 용산 편에 섰다.
당 안팎에서 이같은 상황의 원인으로 한 대표가 비윤석열(비윤)계에 가까운 행보를 하는 점을 꼽는다. 한 대표 취임 이후 당내 친한계가 늘긴 했지만, 현역 의원 중 절대다수가 친윤계인 상황에서 한 대표의 입김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표 의중은 결과적으로 '입법'을 통해 밀어붙여야 하는데, 원외인사인 한 대표가 직접 법안 발의를 할 수 없는 점도 당 장악에 걸림돌이 된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한 대표를 향한 친윤계의 반발은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원조 친윤'으로 불리는 권성동 의원은 지난달 30일 열린 당 연찬회에서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더 강하다"며 "더 강한 대통령과 함께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당 지도부, 원내 지도부가 더 많이 고민해야 하고, 의원들의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모으는 절차를 더 자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따로 가고, 당 따로 가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예가 단 한 번도 없다"며 "우리가 집권 여당이다. 정말 당정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 안팎에선 "대통령실과 건건이 각을 세우는 한 대표를 직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 대표는 당 장악력을 키우기 위해 당내 유력 인사들을 차례로 만나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달 28일 5선 중진이자 자유한국당 시절 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 의원을 만났고, 곧 직전 당대표를 역임한 김기현 의원도 만날 계획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매일일보>에 "당 유력 인사들과 접점을 넓히며 당내 장악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한 대표는 '당 장악력 부족' 지적에 대해 표면적으론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23일 '청년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수료식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당내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처럼 한 명이 이야기하는 대로 무조건 따르는 게 정상적인 건 아니다"라며 "이견이 있는 부분은 투명하게 좁혀가는 과정이 진짜 정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견을 존중할 것이고, 제 답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상대의 말이 옳다면 얼마든지 설득당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