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가 지난 9월 18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연 5.25%~5.50%에서 0.5%포인트 낮춰 4.75%~5.00%로 ‘빅컷(Big cut │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하)’을 전격 단행하면서 2년여 동안 계속한 금융 긴축을 마감했다. 미국은 코로나19 때 풀린 돈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 2022년 3월 이후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려 왔었지만, 물가가 안정되자 금리 인하로 돌아선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이어갔던 기준금리 3.50%의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차이는 상단 기준 2.00%포인트에서 1.50%포인트로 줄어들었다. 미국 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는 지난 2020년 3월 이후 약 4년 6개월 만의 결정이자 2022년 3월 시작된 금리 인상으로부터는 2년 6개월 만이다.
미국 연준(Fed)이 함께 발표한 ‘점도표( 點圖表 │ Dot Chart)’를 통해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를 종전 5.1%에서 4.4%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연내에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국 연준(Fed) 의장은 “9월 FOMC에서 위원들은 기준금리의 적절한 경로에 대한 개별 평가를 작성했다”라면서 “경제가 예상대로 발전하면 올해 말 기준금리의 적절한 수준이 4.4%, 내년 말 3.4%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말했다. 물가가 안정되고 있지만, 고용 등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본 것이다. 연준(Fed)은 연내 0.5%포인트 추가 인하 가능성도 내비쳤다. 금리를 낮추면 경기는 활력을 찾겠지만 물가는 오르게 된다. 금리를 높이면 그 반대다.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국들은 이미 금리를 낮추고 있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9월 12일 2번째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캐나다도 올해 들어 3번 금리를 내렸다. 지난 8월에 금리를 낮춘 영국도 조만간 또 낮출 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며, 스위스·스웨덴·뉴질랜드 등도 이에 가세하는 등 주요국이 금리 인하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돈 풀기’에서 2022년 3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돈줄 죄기’로 전환한 뒤, 다시 방향을 ‘돈 풀기’로 글로벌 ‘피벗(Pivot │ 통화정책 기조전환)’에 나선 것이다.
이렇듯 미국 등 주요국이 고금리 해소에 나선 것은 물가가 잡히면서 경기 부양에 나설 여력이 생겼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최근의 미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3개월간 미국의 경제는 연간 3%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소매 지출도 잘 유지되고 있는 데다 한때 9.1%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월별 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2.5%로 3년 반 만의 최저치로 내려가면서 연준(Fed)의 목표치인 2%에 지난 5개월간 계속 가까워지며 안정되는 추세다. 반면 7월 고용 시장은 침체 조짐이 분명해 보이고 있다.
최근 연준(Fed) ‘제롬 파월(Jerome Powell)’ 의장은 “고용주들이 지난 3개월 동안 매월 10만 개 조금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다”라고 말하며, 이는 “전년도에 비교해서 눈에 띄는 감소”라고 언급했다. 연준(Fed)이 올해 실업률 전망치를 4.0%에서 4.4%로 올린 것에서 보듯이 미국 경제의 침체 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업률은 2023년 7월 3.5%에서 올해 8월 4.2%로 0.7%포인트 상승했는데, 이는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면서 나타난 고금리의 냉각 효과를 보여준다. 이번 연준(Fed)의 ‘빅컷(Big cut)’ 금리 인하는 이제 일자리를 창출하고 선제적 경기 부양에 나설 때라는 방증(傍證)이다.
당연히 한국도 금리 인하가 절실하다. 한국의 경제 상황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로 둔화하면서 2년 가까이 괴롭혔던 인플레이션이 잡혀가고 있다. 반면 내수(內需) 경기는 침체 조짐이 뚜렷하다. 실질소득 감소로 살림살이의 여유를 보여주는 가계 흑자액은 2022년 3분기부터 8분기째 연속 하락했다. 지난 8월 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 흑자액(전국 │ 1인 이상 │ 실질)은 월평균 100만 9,000원으로 1년 전보다 1만 8,000원(1.7%) 감소했다. 2006년 1인 가구를 포함해 가계동향이 공표된 이래 역대 최장기간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흑자액이란 소득에서 이자 비용·세금 등의 비소비지출과 의식주 비용 등의 소비지출을 뺀 금액이다. 우리나라 역시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금융 완화에 나설 타이밍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내수 부진과 고금리로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궁지에 내몰려 있는데 다 집값이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23주 연속, 전셋값은 67주 연속 상승 중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8,621건(해제 건 제외)을 기록하며, 지난 2020년 7월(1만 661건) 이후 4년 만에 최대치를 나타냈다. 지난 8월 가계 대출은 역대 최대치로 늘었다. 지난 9월 1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시중은행 가계 대출은 9조 3,000억 원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 활황에 ‘영끌 족’이 줄을 지었고,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을 앞두고 ‘막차 수요’까지 몰렸다. 은행권은 주택담보 대출 한도 제한 등 자체 방안으로 가계 대출 관리에 나섰지만, 증가세가 당장 꺾일지는 미지수다. 집값 상승 초기에 정부가 “추세적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오판하고 정책 대출 신설, 부동산 규제 완화 등으로 집값 상승 기대감을 키우는 실책을 범했다. 그 결과 금리를 내려야 할 때 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지금 금리를 내리면 집값에 기름을 부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금융 당국이 전방위로 은행을 압박해 대출 증가 속도가 이달 들어 다소 떨어졌지만 “나만 낙오될 순 없다”라는 주택 실수요자들의 ‘소외 공포증’과 ‘주택 구매 열망’은 여전히 최고조에 달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 내수 띄우기에 나서는 경우 ‘영끌’과 ‘빚투’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될 우려가 크다. 이렇게 늘어난 빚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더욱더 위축시켜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결단코 적지 않다. 따라서 한국은행은 고금리를 지속하다 경제를 침체의 늪에 빠뜨리지 않도록 금리 인하의 최적의 타이밍을 포착해야 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은 1분기보다 0.2% 역(逆) 성장했다. 지난 9월 5일 한국은행은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로 집계돼 2023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5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한 바 있었으나 2022년 4분기(-0.5%) 이후 1년 6개월 만에 분기 기준 역성장을 기록했다. 실업도 심각하다. 지난 9월 1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 고용률(46.7%)은 취업자가 큰 폭으로 줄면서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 포인트 낮아졌다. 실업률도 이례적으로 고용률과 함께 떨어졌다. 지난달 청년층 실업률(4.5%)은 0.9% 포인트 떨어지면서 겉보기엔 고용 호조세를 나타냈다. 일하지 않고 취업 준비도 없이 3년 넘게 무기력하게 쉬고 있는 장기 니트족이 8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한국 경제에 일단 호재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좁혀져 그만큼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화 가치 안정에 도움이 되고, 주식시장에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금리 인하 부작용 또한 막대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계 부채 증가와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세를 더욱 자극할 우려가 크다.
한국은행은 오는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그때까지 가계 대출과 집값을 잡지 못하면 금리 인하는 어렵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미국발(發) 금리 인하를 따라가기보다는 ‘국내 요인’을 감안하여 금리를 결정하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표명한 것도 이러한 속사정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연준(Fed)의 ‘빅컷(Big cut)’ 결정을 ‘글로벌 복합위기 종료 신호’로 해석하고,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내수 활성화에 두겠다며 금리 인하를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한국은행이 오는 10월 11일에 금리 인하를 결행하기 위해서는 체감할 수 있는 수도권 아파트 공급 확대, 투기성 부동산 대출 통제 등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 가계 부채와 부동산 가격 거품이 금융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금융·통화 당국은 긴밀한 공조를 통해 세계적 금리 인하 국면에서 최적의 통화·재정·금융·부동산 정책 조합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또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리, 제2금융권의 자본 확충 등 취약 고리의 구조조정을 지속하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지 않도록 면밀한 모니터링과 빈틈없는 단계별 비상 대책을 총력 가동해야 한다. 방만한 정책 대출부터 옥죄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조기 시행, 담보인정비율(LTV) 강화부터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조바심 때문에 위험 수준으로 부풀어 오른 부채 폭탄을 더 키우는 치둔(癡鈍)의 우(愚)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