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선민 기자 | 배추 한포기 2만원, 깻잎 한 장 100원, 편의점 김밥 한줄 3900원 지갑 열기 두려운 시대다. 정부는 소비자물가지수 안정화를 공언하지만, 마트‧편의점에서 상품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을 때마다 망설이는 것은 사실이다.
식료품 가격 급증의 원인으로는 유통 과정에서의 가격 상승 등 다양한 이유가 제시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상기후다. 폭염, 폭우, 폭설, 혹한, 가뭄 달마다 돌아가면서 가지각색의 이유로 금사과, 금배추, 금깻잎, 금오이 앞에 ‘금’자를 달고 장바구니 물가를 견인한다. 올 여름 폭염에는 수온이 올라 양식 수산물이 줄줄이 폐사했다.
이상기후로 인해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의 고통도 가중되지만, 출하량이 줄어 한해 사업 전체가 피해를 받는 농어민들은 생계의 위협에 놓인다. 어민들의 경우 고수온 폐사로 인한 피해는 재해보험에 특약으로 가입해야만 보상받을 수 있는데, 보험료 부담이 커 미리 대비가 안 된 어가가 대부분이다.
농어민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식량안보와 직결된다. 정부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국산 농수산물을 비축하고 해외 곡물 공급망을 확보하는 등 선제적 노력이 필요하지만, 농식품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물가를 잡겠다며 사과 수입을 검토하고 중국산 배추를 들여오는 것은 주먹구구식 대응책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 등이 발간한 2024 세계 식량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2022년 12개국 5700만명, 지난해 18개국 7700만명이 극심한 식량불안에 시달렸다.
물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는 당장 식량 불안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올 여름 금사과, 금배추를 지켜본 국민들은 더 이상 강건너 불구경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우리 정부만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모양새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장은 마치 대형마트를 방불케했다. 참석한 의원마다 배추, 벼, 소고기, 전복 등을 들고 나와 정부의 수량 예측이 빗나갔다며 질타했다. 하지만 현장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들은 핑계를 대기 바빴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부터 언론에서 ‘금배추’를 예상했지만, 정부는 9월 배추 가격이 8월보다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 언론도 다 걱정하는데 농식품부만 걱정하지 말라고 해놓고 일이 벌어지면 핑계 대기 바쁘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나서야 “당장 지금부터 시나리오별로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한국은행이 낸 ‘이상기후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이상기후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2010년 이후 대부분의 품목에서 유의미한 영향이 있었다. 특히 식료품 및 과실의 영향력이 컸고, 2023년 중반 이후부터는 물가에 미친 영향력이 뚜렸했다.
정부는 국민들이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미리 연구용역 등을 통해 선제적 파악을 해뒀어야 한다. 1970년대 86.2%에 육박하던 한국의 식량자급율을 2021년 44.4%로 떨어졌다. 쌀을 제외하면 11.4%에 불과하다. 2022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식량안보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국민들이 식량불안을 체감하고 위기감을 느끼기 전에 기후변화에 발맞춘 내재해성 품종을 개발하고, 작물 재배의 적지를 찾아내야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 없이는 갈수록 길어질 여름, 기후인플레이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