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 법안 봇물···상임위 통과 후 법사위 계류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음주 운전 혐의를 피하거나 적발 또는 사고 직후 혈중 알코올 측정 결과를 왜곡하기 위한 편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관련 법 개정은 지연되면서 사회적인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불시 단속 또는 사고 후 음주 측정을 거부하거나 도주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유명 가수 김호중이 음주운전 사고 직후 현장에서 이탈한 뒤 추가로 술을 구매해 마시고 경찰 음주 측정에 응해 결국 검찰에서 음주 운전 무혐의 처분을 받자, 모방이 의심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몇몇 사례를 보면 대구에서 한 60대 남성이 주차 후 차에서 비틀 거리며 내린 뒤 진행된 경찰 음주 측정에서 만취 상태(혈중알코올농도 0.128%)로 나왔지만 그는 "주차 후 차 안에서 약 39초 동안 알코올 도수가 25도인 소주 1병을 모두 마셨다"고 주장하며 음주운전 사실을 부인했고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내려졌다.
앞서 지난 6월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A씨가 음주단속을 피해 경찰을 매달고 도주 후 2시간여 만에 체포됐다. 음주 측정 결과 면허취소 수준(0.08% 이상)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A씨는 "차를 버린 뒤 편의점에서 술을 사다 마셨다"고 주장하는 등 혐의를 부인했다.
이 외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음주단속이나 사고 시 운전자를 바꿔치기하거나 블랙박스를 삭제·파손 시키는 행위, 음주 후 차량에 탑승해 잠시 세워두고 술이 깰 때까지 기다리는 '대리운전 호출 가장' 행위, 음주 측정기를 입에 대지 않고 음주 측정 불가 상태로 만들어 시간을 버는 행위, 단속 지역이나 시간 공유 글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음주단속 회피와 혐의 부인이 잇따르고 관련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법·제도 개정은 늦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음주 측정 거부·도주 등에 따른 처벌을 명시하고 있지만 만취 운전자와 비슷한 처벌 수위로 억제 효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술타기 등 꼼수에 대응하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법 체계에선 음주 운전 후 도주 또는 뺑소니 사고 시 운전자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경찰이 입증해야 한다. 동선에 따라 폐쇄회로(CC)TV를 확보하고 증인을 찾는데 수반되는 공권력 낭비가 상당하다.
이를 확보한 뒤 음주 운전 의심자의 체격 조건과 음주량, 경과시간 등을 감안해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추산하는 위드마크 기법을 적용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술을 더 마실 경우 법정에서 명백한 증거로 채택될 확률은 낮아진다.
위드마크 공식을 제대로 적용하는 역추산을 위한 '최초 농도' 수치가 있어야 하지만 사고 직후 도주하면 이 수치를 측정하지 못해 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법 보완에는 정치권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 사회적인 합의 부족과 논의 지연이 일부 있었지만, 지난 5월 김호중 사고 논란 뒤 모방 의심 사례가 잇따르면서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9건이나 발의됐고 김호중 구속 기소 100일째였던 지난달 25일에는 이른바 '김호중 방지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해당 도로교통법 개정안에는 음주단속을 위한 경찰의 호흡 조사가 개시되기 직전 측정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술을 추가로 마실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자전거 및 개인형이동장치(킥보드)에 대해서도 동일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해당 법안은 행정안전위원회 통과 뒤 아직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국회 본회의 상정 및 시행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전망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음주운전에 적발됐더라도 행정사를 통한 구제 노력 자체를 규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음주운전 관련 처벌을 줄이는 데 일조하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상대적으로 쉽게 구제받은 음주 운전자가 같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