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헌재법상 재판관 임명권자는 대통령, 권한대행 임명권은 극히 제한적
매일일보 = 정두현 기자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이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국정을 대리하고 있는 가운데,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선임할 수 있느냐 여부가 쟁점화되고 있다.
16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는 야당 주도로 윤 대통령 탄핵 심리·선고를 맡게 될 헌법재판관 후속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여야 추천 몫으로 3명(여당 1명, 야당 2명)의 재판관 후보자가 지명된 상태로, 국회 인사청문특위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이 의결되면 한 권한대행이 이를 최종 임명하는 절차만 남게 된다.
다만 윤 대통령의 '직위'가 여전한 상황에서, 한 권한대행이 헌법기관 인적 구성 등 대통령 고유의 인사권을 온전히 대리할 수 있느냐를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헌법 111조에 따르면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헌법재판소법 6조에도 재판관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음이 명시돼 있다. 두 법문 모두에서 권한대행이 대통령 인사권을 대리할 수 있다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헌법상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행정권, 외교권, 국군통수권, 헌법기관 구성권 등을 전면 승계하도록 돼 있지만 대법원장, 헌법재판관 등 헌법기관 임명직에 대한 인사권은 제한되는 법적 관례도 엄존한다.
실제 이같은 법리를 들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재소장 임명을 반대한 사례도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탄핵 조기 선고' 기조에 따라 헌재 정족수(9명)에 못 미친 8인 체제에서 심판 및 선고가 이뤄졌다.
지난 2017년 2월 판사 출신인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회의에서 "일각에서 황교안 대행이 신임 헌법재판소장을 새롭게 임명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이나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그는 박 대통령 측이 '탄핵 지연전'을 펴고 있다며 "우리 국회는 어떤 경우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고 못 박았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도 당시 "한 나라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사안이 걸려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며 "후임 소장을 임명하게 되면 그 분은 처음부터 다시 심리를 시작해야 한다. 조속히 탄핵 국면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민심과 거리가 있다"고 추 대표에 힘을 실었다. 또 황 권한대행이 후임 헌재소장을 임명해도 국회 인준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도 "황교안 대행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수 없다"며 "법리적으로도 그렇고 이미 정치적 사안으로 부상했기에 더욱 경계합니다. 탄핵결정을 미루려는 꼼수라고 본다"고 당시 당 지도부와 결을 같이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2017년 4월 황 권한대행이 이선애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며 헌재 조직권을 행사한 사례도 있다. 다만 이는 당시 박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라 임명권을 보유한 대통령직이 '궐위'에 놓인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중견 로펌 소속 한 헌법전문 변호사는 <매일일보>와 통화에서 "대통령이 '궐위'가 아닌 '사고'인 상태에서는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에 제약이 있다고 보는 게 법률적 통념이자 관례"라며 "특히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 임명직의 경우 권한대행에 주어지는 인사권은 더욱 제한적이게 된다"고 했다.
반면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데 법률적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법조계 출신인 민주당의 한 의원은 "권한대행의 고위직 인사권은 정치적 상황이나 법률 해석에 따라 충분히 행사가 가능한 부분"이라며 "헌법상 권한대행의 임명권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 금지한 조항은 없다"고 했다.
한편 일각에선 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가부를 떠나 대통령 권한대행의 인사권 범주가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법적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이번과 같은 대통령 공백 상황이 야기됐을 경우, 권한대행의 '인사권 범위'를 놓고 다양한 법률 해석과 정치논리가 분출하며 혼선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