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차기 한은 총재 내정자로 김중수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가 내정됐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오는 23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후임 총재로 확정될 예정이다.
김 내정자는 1947년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한림대 총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의 초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뒤 주OECD 대사직을 수행해왔다.
김중수 내정자는 1993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에 발탁된 이래 OECD가입 준비소장을 맡아 당시 대외개방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주역으로, 지난 10여년간 ‘정부주도 수출중심의 글로벌 확장경제정책’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김중수 후임 총재 인선 배경과 관련해 청와대 측은 “한은의 중립성과 자주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그런 문제 때문에 기획재정부 출신은 검토 대상에서 우선적으로 배제시켰다”고 밝혔지만 세간의 반응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우선 그동안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어왔던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과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에 비해서는 훨씬 무난한 인사라는 평이 한편에서 존재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어윤대․강만수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 대통령 측근이자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김 내정자의 총재 취임으로,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정권의 입맛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중수 “한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아니다”라는 소신
선진당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공복임을 천명한 셈”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김중수 총재 내정 인선을 발표하면서 그 배경에 대해 “김 내정자는 학계, 관계 등을 거쳐 한국경제 전반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경륜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OECD 대사로 국제적인 경험과 안목도 겸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선규 대변인은 이어 “또 풍부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시장주의자로 정평이 나있고 그에 따라 한국은행의 업무수행에 있어서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특히 우리나라가 올해 G20 의장국으로 G20 중앙은행 총재회의를 주도하고 국제 금융개혁의 아젠다를 선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경제 위상이 올라감에 따라 한은의 기능과 역할도 이제 새로운 위상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며 “국제 금융협력 분야에서도 한은의 역할과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 등 여러 문제를 고려해 김 내정자가 가장 적임자라는 판단에 따라 차기 한은 총재로 내정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권 반응…한은 종속 우려이번 인선에 대해 한나라당 정미경 대변인은 “김중수 내정자는 폭넓은 경제지식을 갖췄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철학에도 밝고 전반적인 경제분야에 정통한 적임자”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미경 대변인은 특히 김 내정자가 현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 한은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 “청와대 경제수석만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니라 원래 대학교수 출신으로, 경력을 본다면 충분히 독립성을 지킬 인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김중수 OECD 대사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낸 분으로 친정부 인사로 분류된다”며, “이명박 정부의 통화정책 관여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은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적임자인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우상호 대변인은 “김 내정자는 평소 ‘한국은행도 정부이며, 정부의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한다’는 소신을 밝혀왔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며, “비록 실망스러운 결과이나 내정된 만큼 한은 총재로서 한은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적극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의 노영민 대변인도 “명백한 코드인사로, 어렵게 지켜온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이 훼손될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논평했다.
자유선진당의 평가는 민주당의 것보다 더 쓰다. 선진당 지상욱 대변인은 17일 ‘한국은행 총재인가? 청와대 경제수석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새로 임명된 김중수 한은 신임 총재 내정자의 인식을 보면 축하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밝혔다.
지상욱 대변인은 김중수 신임 총재 내정자가 지난 12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이 정치적으로 또는 행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에 대해 “결국 자신은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공복임을 천명한 셈”이라며, “자기 자신을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 대변인은 “한국은행은 때로는 정부와 정책조율도 필요하겠지만 대통령의 뜻을 좇는 기관이 아니”라며, “한은의 본래 목적은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사이에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정책 결정을 통해 서민 경제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윤대나 강만수는 너무 세서 기재부가 불편해했다?
통화정책 결정권 청와대로…‘브레이크’가 사라졌다
김 내정자에 대한 한은 내부의 일차적 반응은 그동안 거론된 유력후보들에 비하면 가장 ‘무난한 인사’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 정부와의 소통이 강화되면서 이성태 총재 시절 불거졌던 대정부 갈등과 현안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중앙은행이 견지해야 할 독립성이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혼재되어있는 분위기이다.
이에 반해 그동안 한은과 갈등이 있었던 기획재정부는 김 내정자에 대해 환영한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김 내정자가 이명박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과 재정부 산하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낸바 있어 현 정권의 경제 정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재정부와 한은과의 더욱 긴밀한 정책공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시장에서는 김중수 내정자의 한은 총재 임명으로 이제 금리인상이나 출구전략 등 통화정책 결정 권한은 한국은행이 아닌 청와대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어윤대나 강만수는 너무 세서 기획재정부가 불편해했다”는 후문과 함께 굳이 어윤대․강만수 카드를 쓰지 않더라도 학자 출신인 김 내정자의 성향상 충분히 한은을 정권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그동안 한은 총재를 외부에서 선임할 경우 장관이나 부총리급 인물이 내정됐던 반면, 김 내정자의 현직인 OECD대사는 차관급으로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한은의 대정부 종속이 더욱 노골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더불어 한은이 ‘금융정책’을 통해 ‘경제’를 이끌어가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금융에 대한 전문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 반해 ‘정통 경제학자’인 김중수 내정자가 ‘금융’ 쪽에는 커리어가 전무하다는 점이 큰 이유의 하나로 평가된다.
재계 일각에서 이미 예산편성(기획재정부)과 금융정책(금융위) 결정권에 더해 다수당인 한나라당을 통해 예산 심의․의결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청와대가 한은까지 발아래 두게 됨에 따라 ‘브레이크’가 사라졌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