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태혁 기자]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돌파했다는 영화 ‘덕혜옹주’를 보는 내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어느 정도의 ‘허구’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문제는 극적인 줄거리 전개를 위해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진실까지 왜곡했다는 점이다.
조목조목 한번 따져보자.
영화중에 덕혜옹주가 일본 옷 입기를 거부하고 한글학교를 세웠다는 장면이 나온다.
덕혜옹주는 국내에 있을 때도 일본인 보모와 일본인 가정교사에 둘러싸여 자랐다.
특히 덕혜옹주가 지은 일본어 동시는 일본의 유명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조선과 일본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과 조선 민중들에게 조선왕실을 친근하게 여기게 하려는 사이토 총독의 특별한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닌 일본학교는 무조건 기모노와 게다를 신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학교를 세웠고 “기모노 입기를 거부했다”는 것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부분이다.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던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부분은 정말 억지중의 최고의 억지다. 덕혜옹주는 일본에서 왕족으로 특별대우를 받았다. 부러울 것 없이 생활을 했던 그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물론 덕혜옹주는 나라를 빼앗기고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결혼을 했고 말년에는 정신병까지 걸려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랬다면 영화 포커스를 여기다 맞춰야지 독립운동에 맞추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영친왕의 망명 시도 장면은 불쾌하기까지 했다.
가족들과 해외 유람을 다닌 일본 육사 출신의 장교가 상해로 망명 할 생각을 했다는 건 너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제가 패망하자 영친왕은 “아무쪼록 지금까지와 마찬가지 대우를 해줄 수 없느냐?”고 일본 내각에 애걸했다는 증언까지 있다.
당시의 조선 민중들은 덕혜옹주나 영친왕에 대해 아주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초근목피(草根木皮)’하고 있는데 조선왕실은 일제 비호 하에 ‘호의호식(好衣好食)’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광복절 즈음에 뜬금없는 조선왕실 띄우기 ‘덕혜옹주’는 흥행에는 성공 했는지 모르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독립투사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