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송병승기자] “빗자루와 걸레를 놓으면 학교가 멈춘다. 이렇게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은 학교가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대학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인간임을 알리는 날이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연맹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이하 서경지부)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8일 오후 연세대학교 본관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결의대회에는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병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사회단체, 정당, 각 대학 학생들이 참여했다.
앞서 홍익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지난 1월3일부터 2월21일까지 49일간의 파업 점거 투쟁을 통해 전원고용승계와 기본급 인상(시간당 130원 인상) 등의 눈물겨운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잘난 대학=못된 대학”…열악한 근무환경은 도토리 키재기
등록금 동결해서 임금도 동결? “남은 건 투쟁 통한 승리 뿐”
“오늘은 대학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인간임을 알리는 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학교가 나서지 않기 때문”
매서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약 800여명의 각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하루 동안 파업을 결의하고 각 대학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후 오후 2시부터 연세대학교 본관 앞으로 집결해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 진행을 맡은 서경지부 이재욱 조직차장은 “지난 2월 21일 홍대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고용승계가 결정되고 나서 (함께 점거 농성을 벌이던 사람들과) 서로 얼싸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아직 남아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미완의 승리다”라고 말하며 결의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진 대회사에서 서경지부 박명석 지부장은 원 사용자인 학교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 지적했다.
박 지부장은 “용역회사는 어느 것도 결정할 수 없기에 학교와 교섭을 하려 했지만 학교는 문제해결을 회피하고 파업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며 “이제 더 이상 살수 없기에 우리의 노동시간의 가치 인정을 요구 하겠다”고 밝혔다.
박 지부장은 “지난해 10월부터 계약 시기가 동일한 대학을 모아 집단 교섭을 실시했지만 대학당국은 ‘용역을 주었기 때문에 용역과 말하라’고 하고 있다”면서 “그런 용역 회사를 대학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더불어 박 지부장은 “빗자루와 걸레를 놓으면 학교가 멈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이제는 시키는 데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알았다”
각 대학 노조의 분회장들은 이번 하루 총파업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용역업체와의 계약 조건만을 운운하는 대학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대학교 이영숙 분회장은 대학과 수차례 교섭했지만 학교당국은 최저임금인 ‘시급4320원’을 고수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 분회장은 “쓸고 닦고 하면서 받은 최저임금을 우리는 그동안 최고임금인 것처럼 알고 살았다”며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분회장은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라 불려지는 대학이 이래서 되겠냐”면서 “약한 노동자를 짓밟는 학교는 망신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김경순 분회장은 승리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김 분회장은 “3개 대학이 길이 멀다 하지 않고 달려온 것은 잘난 대학 탓”이라며 “그들(잘난 대학들)은 우리의 삶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이어 “앞으로 남은 것은 못된 대학을 상태로 투쟁하여 쟁취하는 것 뿐”이라며 “결의된 마음을 가지고 승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파업을 처음 경험한다는 이화여자대학교 신복기 분회장 역시 “한마음으로 함께 하니 틀림없이 승리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신 분회장은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함께 해 주어서 너무 좋다”며 “이제 남은 것은 승리뿐”이라고 확신했다.
열악한 근무조건은 똑같다
홍익대학교 문제(매일일보 335호 18-19면 “한 달 식비 9천원과 무보수 잔업의 끝…해고”)를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이들의 근무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고려대학교 경비 노동자 김씨(63)는 근무 조건과 관련해 “근무지는 1층인 휴게실은 지하 5층에 위치해 있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는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24시간 2교대로 근무하지만 급여는 100만원 정도”라며 “모든 것이 열악하고 안 맞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도 근무여건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대 강의동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는 박씨(64)와 조씨(69)는 “근무지에 휴게실이 있긴 하지만 좁아서 다닥다닥 붙어 앉을 수 있는 수준”이라며 “옷 갈아입을 곳도 없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얼른 갈아입는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취사가 금지된 학내에서 식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그 마저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좁은 공간내에서 해결하고 있는 상황이다.
냉·난방 시설 역시 전혀 갖춰져 있지 않고, 그나마 하나 있는 전자렌지도 버려진 물건을 주워와 사용한다고 이들은 전했다.
대학생들도 적극 지지
이날 진행된 총파업 결의대회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 뿐만 아니라 학내에서 진행된 ‘집단 교섭지지 서명’에도 3개 대학의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참여해 청소·경비 노동자들에 대학 학생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의대회에 참여한 연세대학교 생명시스템대학 3학년 학생은 “학교 축제 때 어지럽혀진 학내를 청소해주시는 청소 노동자 분들의 고생을 보게되었다”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에게 최저임금을 넘어선 시급 5000원대의 급액은 많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니 감격스럽다”며 “꼭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승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일반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생회 차원의 연대도 이어졌다. 연세대학교 정준영 총학생회장은 “오늘은 대학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인간임을 알리는 날”이라며 “이렇게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학교가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루 동안 진행된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인해 강의실 문을 열지 못해(여는 방법을 몰라) 수업이 휴강된 일, 쓰레기통에 불이 난 일 등의 에피소드를 소개 하면서 “오늘 일어난 일들로 인해 학생들도 노동자들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총학생회장은 “학교는 등록금을 동결해 주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엉뚱한 핑계를 대고 있다”며 “노동자와 학생이 연대해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류지연 부총학생회장은 “겉으로는 명문사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학들이 뒤에서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을 하고 있다”며 “대학이 얼마나 학생, 노동자들을 업신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홍대가 그러했듯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학생들도 끝까지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김지영 부총회장 또한 “우리가 함께 하기에 요구 실현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더러움’ 드러난 대학
한편 이날 총파업 결의대회로 인해 3개 대학 학내의 청소·경비 업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일손을 멈춘 자리에는 하나 둘씩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대 총학생회장이 소개한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업무는 학생들의 편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총파업 결의대회가 진행된 연세대학교 본관 옆 백양관 건물의 화장실에는 냄새가 진동했고 곳곳에 휴지가 널려 있었다.
건물 안쪽에 위치한 쓰레기통도 넘치기 직전의 모습을 보였다.
“재교섭 깨지면 무기한 파업 돌입할 것”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연맹 서경지부는 3개 대학, 용역 업체와 지난해 10월 22일부터 올해 2월 16일 까지 12차례의 교섭을 진행했다. 서경지부에 따르면 이 교섭에서는 임금문제, 단체협약 등의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현재 대학 측은 홍익대학교 임금타결 선인 4450원을 제시하고 있고 노조 측은 4800원을 제시하고 있어 교섭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서경지부는 8일 총파업 결의대회 하루파업이 끝난 후 재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경지부 관계자는 “다음주 재교섭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무기한 파업에 돌입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