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상고방침 밝혀…에버랜드 사건 3라운드 공방이 끝나야 최종가닥 잡힐 듯
이재용 경영권 승계 준비 사실상 끝났나?…에버렌드 건 마무리되면 빠른 속도로 진행될 듯
[147호 경제] 지난 달 29일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사건 항소심에 대한 검찰의 유죄 판결은 삼성그룹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한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이날 허태학(전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과 박노빈(전 삼성에버랜드 상무)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30억원을 선고했다. 전환사채(차후에 주식으로 전환되는 사채) 발행이 삼성그룹 후계자 이재용씨의 삼성에버랜드 지배권 취득을 위한 과정, 즉 경영권 세습과정의 행위에 임원들이 불법적으로 개입했음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이른바 ‘재벌 봐주기식 태도’를 버리고 비상장주식(증권거래소에서 사고 팔수 없는 주식 즉, 시장 형성이 없이 사적으로 사고 파는 주식)에 대한 평가를 법원이 시도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소장은 “재판부가 비상장주식 거래를 통한 재벌총수의 불법적인 부의 취득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며 “다른 재벌 총수들의 유사사건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판례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검찰은 이번 2심에서 허태학씨와 박노빈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특경가법)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1심에선 벌금없이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했으나 형량이 더 높은 죄를 적용한 것이다.
문제는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 모두 에버랜드 임원들의 배임죄 여부만 판단했을 뿐, 항소심의 쟁점 중 하나였던 이 회장 등 삼성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는 2심에서도 공소사실에 포함돼 있지 않았고 재판부도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는 등 판단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이다.
전환사채의 발행 및 실권, 그리고 이재용 등으로 재배정 등 일련의 과정을 실질적으로 주도 혹은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및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의 ‘공모’ 여부를 법원이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비상장주식평가를 유보했던 원심 판결의 잘못을 바로잡았다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재벌 봐주기식 판결’이라는 비판으로부터 법원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1심과 2심의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지난 달 30일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하면서 대법원의 막판 뒤집기 판결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즉 항소심의 3가지 핵심쟁점이었던 ▲CB 저가발행과정에 이사들이 배임을 했는지 ▲손해액은 얼마인지 ▲CB발행이 에버랜드 지배권을 이재용씨에게 넘기기 위한 공모 속에서 진행됐는지 등에 대한 유ㆍ무죄 여부가 사실상 대법원에서 판가름이 나게 돼 삼성측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 수 있게 됐다.
결국 지난 2000년 6월 법학교수 43명이 이건희 회장 등 33명에 대해 상법상 특별배임 및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하고, 2004년 3월 에버랜드 CB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있은 뒤 7년여 간 진행돼 온 공판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양측의 지리한 공방으로 또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일련의 상황을 보면 1심과 2심 판결을 통해 재판부가 허씨와 박씨에 대한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터라 이건희 회장과의 ‘공모 혐의’ 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에, 향후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어떤 결과물을 도출해내느냐에 따라 법원은 상고심에서 삼성그룹의 손을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법원, 상고심서 ‘삼성 손’을 들어줄까?
항소심 선거 이후 시민사회단체는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삼성그룹은 심한 후폭풍을 맞고 있는 모습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지적처럼 이병철 선대회장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짊어졌던 멍에, 이건희 현 회장이 삼성자동차 실패로 짊어졌던 멍에에 이어 회장이 되기도 전부터 이재용씨의 부당이득과 경영권 승계구도에 따른 3차 시련이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업무상 배임죄의 공소시효가 ‘7년’인 까닭에 일단 ‘그룹 차원에서의 공모 여부’를 수사하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을 더 확보하게 된 검찰은 말 그대로 ‘삼성공화국’을 상대로 앞으로 숨통을 조일 형국이어서 향후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항소심 뒤 브리핑에서 “1심에서 업무상 배임 혐의만 적용됐을 때는 2003년 12월 1일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지만 특경가법상 배임이 적용돼 3년여의 시간이 더 늘어난 만큼 시간을 갖고 수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런 까닭에 항소심 판결을 계기로 ‘힘을 제대로 받은’ 검찰이 한창 항소심 공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처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소환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계속 보일지에 세인들의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법원에서 “전환사채를 인수해야 할 법인주주들의 약속한 듯 전부 실권하는 행위는 삼성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지시나 의사를 따르지 않는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힌 뒤 이건희 회장의 지시 혹은 개입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소환조사’는 항소심 판결 이후로 미뤘던 상태다.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1심 판결보다 높은 형량이 항소심에서 선고된 만큼 이 회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법원이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를 문제삼음에 따라 사실상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만을 남겨둔 상태임은 분명해서다.
정치권, 시민단체 “이건희 소환하라” 한 목소리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지난 달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사장에 불과한 허태학, 박노빈 전 에버랜드사장이, 이건희 회장 몰래 독단적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이재용에게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검찰은 이건희 회장을 소환해야 하고, 전환사채 헐값발행을 지시했는지, 강도 높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항소심 선고 후 이 회장을 소환하겠다는 검찰이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킬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검찰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한발 더 나아가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및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의 공모관계에 있는 당시 법인주주들의 이사들에 대해서도 조속히 추가적인 기소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건희 회장이 국내 1위의 재벌기업 총수라는 점에서 소환 자체가 경제에 미칠 파급력을 감안, 검찰은 현재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갑자기 입장을 180도 선회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삼성 장학생’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검찰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 소환 조사 한번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이번에만큼은 이 회장을 소환 조사해야만 그동안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검찰은 이학수 부회장과 중앙일보사 홍석현 회장 등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된 피고발인들에 대한 조사는 대부분 완료한 상태다. 말 그대로 이건희 회장만 남은 셈이다. 이에 대해 삼성 내부에서는 여전히 ‘검찰이 실제로 이 회장을 소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언론보도 등을 통해 현재까지 전해진 바에 따르면 검찰은 이건희 회장을 언제든지 소환해 조사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가 준비돼 있고 예상질의서도 작성해둔 상태다. 이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가 사실상 ‘초읽기’에 돌입한 것이다.
이 회장 소환 ‘초읽기’ 돌입?
다만 검찰은 일단 수사의 여유를 갖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는 공소시효가 더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되는데, 결국 CB 저가 발행 지시 의혹을 받고 있는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시기는 시민사회단체의 기대와 달리 다소 늦춰질 것이라는 게 재계와 법조계가 내놓는 일반적 관측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검찰로서는 대법원 결정을 최종적으로 지켜본 뒤 수사시기를 조율할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와 함께 시선이 집중되는 대목은 다름아닌 검찰의 대법원 상고 여부다. 물론 삼성측이 항소심 판결 직후 곧바로 상고했기 때문에 검찰이 상고를 하지 않더라도 사건은 대법원에서 다시 다뤄지긴 하지만 핵심 포인트는 검찰의 ‘자존심’이다.
검찰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당시 적정 전환가가 8만5천원이라고 보고 배임 액수가 970억여원에 달한다고 지난 2003년 기소했다. 하지만 이번 2심 항소심에선 전환사채 발행 직전인 1995년 삼성물산과 삼성건설간 합병시 이뤄진 주식거래가액을 기준으로 에버랜드 주가는 1만4천825원이고, 회사에 발생한 재산상 손해 및 이재용씨 등이 취득한 재산상 이득액은 최소한 89억4천만원이라고 판단했다.
경제개혁연대측은 이에 대해 “2심 판결이 기준으로 삼은 거래는 다름 아닌 삼성계열사간 합병시 거래라는 점에서 참고할만한 객관적인 거래라고 할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나 기준이 없이 만연히 계열사간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에버랜드 주식가액의 최소한을 1만4천825원으로 판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검찰이 적정 전환가 산정에 불복해 상고할 가능성이 크다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달 30일 공식적으로 “대법원 상고 여부를 늦어도 다음주 초까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항소심 선고 직후 판결문 분석에 돌입한 상태다.
삼성그룹측의 걱정거리는 이건희 회장의 소환에 따른 검찰조사도 한 가지 사안이지만,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여론의 압박도 큰 짐이 되고 있다.
일단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태 발행과 관련된 항소심의 선고 공판 결과가 유죄로 나오면서 삼성 지배구조도 직ㆍ간접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및 총수 일가 지분이 0.8%에 불과한데도 매출 140조원, 자산 230조원의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지배구조 개선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노회찬 의원의 표현대로 “200조원이 넘는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단돈 61억원에 불법으로 넘긴 것”으로 요약된다.
지배구조 개선 여론 압박, 삼성측 고민은?
이미 알려진 바대로 이재용씨는 지난 1995년 이후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취득하고 비상장사를 상장시킨 후 지분을 매각해 마련한 돈으로 에버랜드ㆍ삼성전자 등 핵심회사의 지분을 인수했다. 이후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최대주주로 등극하는 등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이재용씨는 이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1995년 60억원을 증여받아 세금을 내고 남은 44억원으로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등 비상장사 주식을 사들여 상장시킨 후 처분해 56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이후 에버랜드 지분을 약 100억원에, 삼성전자 지분을 약 450억원에 취득했다. 이재용씨가 에버랜드 최대 주주가 되자 삼성생명은 에버랜드에 대해 주당 약 9천원에 20%지분의 사모사채를 발행,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가 됐고 결국 삼성그룹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했다.
때문에 향후 이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의 불법성 논란이 사라지지 않을 경우 CB발행 때 실권한 소액주주들이 이 회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관측되는 등 당분간 이재용씨와 삼성그룹 계열사의 모든 주식거래에 대한 한 점 의혹없는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러각도에서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번 형사재판에서의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제기의 시효(10년)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별개의 민사적 책임추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까닭에 언론계와 경제계는 이구동성으로 ‘이재용씨의 경영권 승계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삼성 지배구조의 미세한 조정은 있어도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기업전문 기자는 “사안을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주주들이 발행 이후 6개월 안에 무효확인 소송을 냈어야 했다”며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해서 법적으로 CB 발행을 무효화할 수 없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에서 유죄로 판결이 나더라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는 견해다. 이재용씨가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 에버랜드 주식 25.1%를 갖고 최대주주가 되면서 사실상 지분상의 경영권 승계는 ‘완료’됐기 때문이다.
이재용 경영권 승계, 사실상 ‘완료’됐지만…남은 과제는
하지만 이재용씨의 불법승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설사 이재용씨가 3세 총수로 등극하더라도 기업의 이해관계자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CEO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한 경제전문가는 “이렇게 될 경우 이재용씨는 물론 삼성그룹과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소 소장은 “이재용씨의 부당이득과 경영권 승계구도는 이미 사회적 정당성을 상실했다”면서 “삼성그룹 스스로 결자해지의 자세로 이재용씨의 불법승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