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잡는 해병? 사람 잡는 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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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잡는 해병? 사람 잡는 해병!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1.07.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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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총기 다중살인…'기수열외'가 해병대 전통이란 말에 해병출신들 충격

[매일일보] ‘귀신 잡는 해병’이 ‘사람 잡는 해병’이 됐다?

지난 3월 국민적 인기를 끌던 배우 현빈(본명 김태평)의 자원입대와 함께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상징으로 한껏 얼굴을 세웠던 해병대는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인해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끈끈한 전우애로 전역 후에도 전우회를 이어가고 있는 해병대는 최근 잇따른 군기문란 사고로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일선 부대에서 전우들을 조준사격 살인하는 사건까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김모 상병, 왕따 주도한 후임병과 하사관 등 4명 조준 살인

“죽고 싶다.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열외가 없어져야 한다”

군부대 총기․탄약 관리 부실과 사병에 대한 인사 관리 부실

해병대 내부 고질적 악습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추정

7월4일 오전 11시40분경 인천 강화도 해병2사단 해안초소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연이어 들렸다. 소초장 1명과 부소초장 3명, 병사 27명 등이 생활하는 작은 해안가 막사는 불과 10여분 만에 아수라장이 됐다.

입대한 지 1년이 넘은 김모 상병은 이날 전우 5명에게 총격을 가한 뒤 수류탄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졌고 1명이 부상당했다.

사건 개요

김 상병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10시 20분 사이 상황실 복도에 있던 총기보관함에서 K-2소총을 절취 후 간이 탄약고에서 실탄 75발과 공포탄2발, 수류탄 1발이 든 탄통 1개를 훔쳤다.

상황실에서 상황병이 자리를 비운 사이 김 상병이 총기와 탄약을 훔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모 이병이 김 상병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모 이병은 김 상병이 상황병들이 상황실을 비운 사이 총기와 탄약을 훔치는 것을 도왔으며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는 김 상병의 말에 “그렇게 하자. 다 죽이고 탈영하자”며 김 상병을 부추겼다.

11시40분경 김 상병은 전화부스 옆에서 상황병 이승렬 상병을 향해 K-2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이후 김 상병은 2생활관을 향했고 가는 길에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마주친 부소초장 이승훈 하사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2생활관에 들어간 김 상병은 좌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자고 있던 권일병에게 3발의 총격을, 우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자고 있던 박치현 상병에게도 조준 사격을 했다.

곧이어 김 상병은 박 상병의 옆 침상에서 자고 있던 권혁 이병에게도 총격을 가하려 했으나 눈치를 채고 일어난 권 이병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생활관 밖으로 떠밀렸다. 이 과정에서 권 이병도 총상을 입었다.

김 상병이 부대원들에게 총격을 가할 당시 김 상병의 총기탈취를 돕고 사건을 부추긴 정 이병은 도망을 가 있어 직접적인 범행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10여분 동안 진행된 상황은 부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김 상병은 달아나던 중 소초장실에서 나오던 소초장에게 “소초장님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체력단련장 옆 창고에서 수류탄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조정간 단발, 조준 사격…왜?

부대원들에게 총격을 가한 김상병의 행동은 우발적인 행동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관심병사로 분류돼 있던 김 상병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실탄을 최대 13발을 쐈으며, 범행 직전 후임병을 죽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군 수사단장 권영재 대령은 5일 조사결과 브리핑에서 “현장에 있던 총기는 단발로 조정되어 있었고, 사망자의 신체 부위를 검시한 결과 난사는 없었다”며 김 상병이 사실상 숨진 부대원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했다고 밝혔다.

권 대령은 “김 상병이 상황병이 자리를 비운 사이 복도의 총기관리함과 간이탄약고에서 K-2 소총과 실탄 75발, 공포탄 2발, 수류탄 1발이 담긴 탄통을 절취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건 직전 후임병을 죽이고 싶다던 김 상병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고 몸을 비틀거리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는 부대원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또한 권 대령은 “발사한 실탄은 최소 12발에서 최대 13발로 추정되지만 현장 감식이 끝나지 않아 숫자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군은 5일 오전 김 상병을 상대로 글씨로 자술 받는 형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 상병은 “기수 열외를 통해 후임병이 선임병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사고의 원인에 대해 “집안 문제냐, 개인 신상 문제냐”는 질문에 모두 “아니”라고 말한 김 상병은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열외가 없어져야 한다”고 진술했다.

총체적 관리 부실

사건이 발생한 상황과 김 상병의 진술을 통해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군부대의 총기․탄약 관리 부실과 사병에 대한 인사 관리 부실, 해병대 내부에 있던 고질적 악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에 따르면 총기보관함과 간이탄약고 열쇠는 상황근무자 2명이 상하 열쇠를 각각 보관해야 하는데 당시 총기보관함과 탄약고는 시건장치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군 관계자는 “(총기함)열쇠관리가 사고 당시에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2명의 상·하 자물쇠에 대한 열쇠를 분리 보관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 1명이 관리했던 부분이 식별됐다”고 말했다.

규정에 따라 상황근무자 2명이 각각 열쇠를 보관하고 시건장치를 정확히 했다면 김 상병이 총기와 탄약을 빼돌릴 수 없었고 이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김 상병이 내부적으로 관심사병으로 분류됐음에도 불구하고 특별 관리를 받지 않아 부대 부적응 병사에 대한 관리 체계도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발생 당일, 해병대 측은 “김 상병은 그 동안 부대 적응에 크게 문제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전역을 9개월 남겨둔 상황이어서 뚜렷한 범행 동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2개월 남짓 해안소초에서 생활하면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거나 사건 당일 부대원들과 문제가 발생해 우발적으로 총기를 난사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범행동기에 대한 진술이 나온 이후에도 해군․해병대합동조사단 관계자는 “상급자가 봤을 때 김 상병의 평소 언행이나 근무 자세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정도”라며 “실제 소대장과의 면담은 2주전에 이뤄졌을 뿐 사건 당일 면담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김 상병이 범행 직전 술을 마신 것 같다는 진술이 나옴과 함께 영내에서 술병이 발견돼 영내 김 상병이 술을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김 상병이 범행 직전 마신 술은 전날 소초경계근무를 나가면서 소초에서 1km 떨어진 마을에서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경계근무를 서기 위해서는 마을을 지나가야 한다”면서 “마을에서 술을 구입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기수열외’…전통?

김 상병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큰 부담을 안겨 줬던 부분은 ‘기수열외’에 따른 왕따와 후임병들에게 선임대우를 받지 못한 부분으로 추정된다.

‘기수열외’는 특정 해병을 해병대 부대원들 사이에서 후임자들이 선임 취급도, 선임자들이 후임 취급도 안 해 주는 것으로, 부대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뒤떨어지거나 부대원들의 눈 밖에 난 특정 사병을 사병들 사이에서 몇몇 상급자의 주도하에 하급자까지 동참해 집단 왕따 시키고 무시하는 행태를 말한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처럼 해병대는 훈련소 기수를 기준으로 강한 위계질서를 내세우는 것으로 유명한데, 특정인을 이런 위계로부터 제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기수열외가 해병대의 ‘오랜 전통’이라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김 상병은 자술 조사에서 “○○○ 일병의 주도로 후임병들이 선임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결국 이번 총기사건은 해병대 내의 전통을 빙자한 기수열외의 부당함을 이기지 못하고 감정이 폭발한 김 상병이 벌인 참극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해병대 출신들이 많이 모이는 한 인터넷동호회에서는 “내가 군 생활하던 십수년전까지만 해도 ‘기수열외’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기수열외가 언제적부터 해병대의 전통이 되었느냐”는 등 분노의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부대 내 구타·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점검하기 위해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인권위는 조사에서 이번 사건의 발생 배경과 원인을 집중 규명할 방침이다. 지난 3월 인권위가 해병1사단 가혹행위 직권조사에서 권고한 ‘부대정밀진단’ 이행상황도 점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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