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에 악역향(?) 주는 ‘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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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에 악역향(?) 주는 ‘인수위’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8.02.04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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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갔다” 잇따른 과속 논란에 총선표 겨냥한 정책들 대부분 꼬리 내려

휴대폰 요금 20% 인하방안, 영어몰입교육 실시 등 야심찬 정책 번복

[매일일보닷컴]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는 4일 오전 영등포시장 상인연합회 사무실에서 가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수위 출범 한 달 만에 ‘인수위 피로증’이 번지고 있다”며 “국민은 한마디로 이명박 신정권과 인수위의 참을 수없는 경박함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이어 “인수위와 이명박 당선자는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며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일 때가 됐으며, 신당은 야당으로서 이런 캠페인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인수위의 지난 한 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인수위는 서민경제 안정을 위해 통신료 20% 인하를 호언장담했으나 결국 업계의 자율적 조치에 맡기기로 하는 등 ‘달콤한 약속’은 서민들을 속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분형 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검토조차 없이 인수위는 집 없는 서민에게 ‘반의 반 값 아파트’라는 달콤한 약속을 던졌으나 이 또한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서민들의 불만과 짜증이 가중되고 있다.

인수위는 특히 ‘영어공교육 강화방안’과 관련, “영어 잘하면 군대 안 간다” “고교만 나와도 영어 잘하게 하겠다”는 정책을 공개했으나 상당수 국민은 “우리 국민을 ‘C급 아메리칸’으로 만드는 생각”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 경향신문 만평
▲ 노컷뉴스 만평
상황이 이렇자 국민의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초고속 질주’를 해온 인수위원회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있다.

4일 인수위에 따르면 이들은 새로운 정책이나 개혁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동안 공개된 정책들을 재정리하거나 목표치를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옮기고 있으며,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는 아예 새 정부의 몫으로 돌려놓는 분위기다. 이른바 ‘정책 후퇴’.

인수위는 민생 안정을 위해 최일선에 내세웠던 정책인 ‘통신비 인하’ 문제를 통신업체의 반발을 경험하자 지난 달 13일 당선자에게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하겠다”며 한발 뒤로 물러서더니 급기야 지난 3일에는 “새 정부에 넘길 계획”이라며 정책 실행을 출범 이후로 미뤘다.

당선자의 대표적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인 ‘7% 경제성장률’ 역시 인수위는 당초 “임기 중 연평균 7% 경제성장률 달성하겠다”고 말했지만, 물가상승 등 국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자 그때서야 ‘잠재성장률 7%를 위한 경제체질 개선’으로 목표치를 슬쩍 바꿨다.

‘영어몰입교육’에 따른 교육정책 대혼란은 인수위의 무능력을 그대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인수위는 당초 이 당선자의 공약에 따라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영어과목 이외에도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방향으로 시행방안을 마련했다가 결국 국민 여론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그럴 계획이 없다”고 뒤로 발을 뺐다.

▲ 조선일보 만평
▲ 한겨레신문 만평
인수위는 지난 한 달 간 ‘정권 인수.인계를 담당하는 한시기구’의 차원을 넘어 ‘제2의 청와대’가 아니냐는 비아냥 속에서 “너무 나갔다”는 과속 논란에 시달려 왔던 터라, 인수위 측의 이번 속도조절은 심상치 않은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 언론은 이 당선자 측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 “국민의 이 당선자에 대한 지지도는 당선 이후 최고치에서 따졌을 때 10% 포인트가 빠져 60%대로 조사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는 등 총선을 앞두고 이 당선자의 지지도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고 그 원인은 인수위가 1차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지난 2일 인수위 자체 전략회의에서 “진지하게 거론한 것도 아닌데 언론에 보도되는 바람에 타격이 컸다” “국민을 당선자 편이 되게 해야 하는데 영어 교육의 경우에는 오히려 모든 국민을 괴롭히는 쪽으로 일이 전개되는 우(愚)를 저질렀다”는 평가 내용이 나왔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실제 이날 전략회의는 당선자 주재로 이뤄졌는데, 이 자리에서 “국민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전봇대 뽑은 것밖에 없는 것 같다’”며 “ ‘이명박 브랜드’가 가졌던 신선감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자체 비판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 내부에서도 인수위의 ‘월권’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한나라당은 강재섭 대표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인수위가 너무 오버하면 결국 반발이 일어난다”면서 “인수위법에 의한 범위 내에서 신중하고 겸손하고 차분하게 일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인수위가 세부정책에 대해 확정된 정책처럼 발표한다든지 정책집행까지 책임지는 행정부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면서 “인수위는 한나라당이 망망대해에서 잡아온 여러 고기를 부두에서 인수받아 공판장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재희 최고위원도 “인수위가 너무나 많은 것을 하려고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면서 “영어 공교육 강화나 통신요금 인하 같은 것은 부처 장관이 새로 취임하면 협의조정해서 발표해야 하는 것인데, 의욕이 앞서서 인수위가 마치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다 보니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인수위의 ‘오락가락’ ‘갈팡질팡’ 행보에 대해선 “인수위가 당선자의 공약을 취임 전부터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 ‘과욕’에서 비롯됐다”는 분석과 함께, 인수위 내부의 ‘불협화음’ 때문이라는 관측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는 최근 사설을 통해 “인수위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정권이 바뀌었으니 과거 정책을 모조리 뜯어고치자’는 식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업무인계인수란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진행 중인 업무와 중요업무를 넘겨주는 것이다. 새로운 업무는 새로운 대통령이 새로운 내각에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라면서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 지금 대통령이 만든 정책을 지금의 각료가 바꾸겠다고 보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기존 질서를 흔들어버리는 등 권한을 넘어서는 오만방자한 인수위의 막강권력이 점령군의 망나니짓으로 다가오고 있다”면서 “인수위의 지금까지 행보를 볼 때 폭정에 가깝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며 정권을 인수하면 그 악정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 앞선다. 이래저래 심사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교육학 박사 이창호씨는 “대통령직 인수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국민에 편에 서서 국민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판단과 평가는 철저히 국민의 몫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심사숙고해서 정책들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요즈음 인수위가 하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개혁 열병에 걸린 환자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모든 것을 뜯어고치려 드는 바람에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자 인수위는 중장기적인 정책구상은 차기 정부로 넘기고, 설을 앞두고 당장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민생대책에 주력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인수위 내부에서는 활동 종료 20여일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총선 출마 △내각 진출 △청와대 입성을 두고 치열한 ‘권력게임’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20일이나 남은’ 인수위 남은 활동 역시 사실상 세심한 검증과 타당성 검토 없이 정책들이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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