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찌를 듯이 흉기 휘둘렀다”더니 “위협감 느꼈다” 말 바꾸기
“증거제출해도 확인조차 안 해”…구속 13일 만에 누명 벗고 출소
[매일일보닷컴] 경찰 수난시대다. 70여일 넘게 이어져 온 촛불집회 덕(?)에 ‘공권력 남용’ ‘폭력경찰’ 등으로 낙인찍힌 ‘민중의 지팡이’ 경찰이 계속해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좋은 일로 여러 사람의 입방아에 올랐다면 좋으련만 이번에도 역시 아니었다.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은 피의자 조서를 과장해 죄가 없는 시민을 구속되도록 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불법체포감금, 독직폭행)로 서울 송파경찰서 지구대 경찰관 최모(55) 경위와 김모(45) 경사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경찰의 이 같은 공권력 남용의 진상은 사건이 벌어진 장소였던 피해자 윤모씨(46)의 사무실에 설치돼 있던 CCTV를 통해 밝혀졌으며 ‘무고한 시민’ 윤씨는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죄인’ 신분으로 서울 성동구치소에 13일간 구속돼 있어야 했다.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만난 윤씨는 구치소 안에서 자살충동까지 느꼈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경위와 김 경사는 지난 2월 17일 오전 2시 30분께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었다는 신고를 받고 관할 지역인 서울 송파구 가락동으로 출동했다. 이 과정에서 윤모씨와 언쟁을 벌인 경찰은 마치 윤 씨가 경찰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처럼’ 목격자 조서를 꾸민 혐의를 받고 있다.하지만 검찰이 검거 당시 상황을 담은 CCTV를 분석한 결과 윤씨는 경찰관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적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흉기를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무실 직원의 제지를 받고 흉기를 순순히 건네줬던 것. 이 날의 사건으로 인해 윤씨는 지난 2월 17일부터 29일까지 경찰에 구속돼 있었다.
검찰은 당시 경찰의 도를 넘은 공권력 행사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해 조서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윤씨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렌트카업체를 운영하던 윤씨는 사건발생당시 술을 마신 후 택시를 타고 송파구 가락동의 사무실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윤씨는 택시기사와 조수석 앞에 붙어있는 사진 속 인물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기사증을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고 들어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택시기사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은 채 ‘술을 마신’ 윤씨에게만 기사증을 돌려주라고 다그쳤고, 이에 화가 난 윤씨는 사무실 한 켠에 딸린 부엌으로 들어가 길이 27~30cm의 식칼을 들고 나왔다. 여기까지는 검∙경찰, 윤씨의 의견이 모두 일치한다.
2초가 10분 되는 이상한 ‘경찰식 셈법’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경찰은 이 대목에서 ‘윤씨가 경찰들을 향해 10여 분간 흉기를 휘둘렀다’고 조서를 작성, 윤씨를 다음 날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기자가 경찰이 작성한 범죄사실 조서를 확인한 결과 ‘(윤씨가)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약 10분간 흉기를 이용,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갑자기 칼을 들고 나타나 신변에 상당한 위협감을 느꼈다는 게 경찰측 주장이다.
하지만 윤씨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칼을 든 것은 맞지만 자해를 하려던 것이지 경찰을 위협하려던 게 아니라는 것. 또 칼을 들고 10여 분간 난동을 부렸다는 경찰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조사에서 윤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된 결정적 증거가 됐던 CCTV 자료를 직접 확인해본 결과 윤씨의 말은 상당히 신빙성 있었다. 칼을 꺼내들기는 했지만 채 2초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사무실 직원에게 칼을
넘겨줬고, 경찰이 주장하는 ‘위협감’을 느끼기에는 상당한 거리차가 있었다.
이에 대해 경찰측 관계자들은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었다면 지구대에서 관할 경찰서로 넘기는 과정, 또 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단계에서 이미 문제제기가 됐을 것이라는 게 경찰측 입장이다.
이와 관련 해당 지구대 노모 대장은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흉기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특수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된다”며 “긴박한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대응한 경찰관을 기소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노 대장은 이어 “CCTV 속 상황과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면서도 “위협감을 느끼는 거리는 개인마다 다르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해당 경찰서 입장도 비슷하다. 송파경찰서 한 관계자는 “경찰 앞에서 흉기를 꺼내는 것은 명백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라면서 “이번일로 경찰들이 업무처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될까 우려스럽다. 이래서는 어떤 경찰이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하려 하겠는가”라고 전했다.
“내 억울함은 창살 밖 고양이도 안다”
하지만 정작 억울한 것은 경찰보다 13일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렌트카 업체 사장 윤모씨다. 그는 이번 일을 통해 ‘법보다 권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직접 통감했다며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윤씨는 “처음 경찰에 기소됐을 때도 CCTV 촬영분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런데 나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는 물론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조차도 CCTV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구속된 후에야 알게 됐다”면서 “그에 대해 변호사에게 따졌지만 날 피하기만 했다. ‘경찰 말이 당연히 맞겠거니’하고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치소에 있는 13일간 혈압이 150까지 상승하고 당뇨병까지 생겨 구치소 내 요양병동에 있었다”며 “검찰 조사와 CCTV가 있었기에 나의 무고함이 밝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지만 그 곳에 있는 한 그는 ‘죄인’이었다. 사형수, 무기수 그리고 윤씨와 같은 미결수와 같은 방에서 함께 지냈던 것. 윤씨는 “구치소에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나 싶어 죽을 결심을 하기도 했다”며 “하도 억울해 구치소 창살 밖 고양이에게 내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구속여부가 결정 났을 당시 모든 것을 포기하려했다는 윤씨. 그러나 무죄가 밝혀진 이상 더 이상 참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이에 대해 “공권력에 의한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이 비단 내가 처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제2의, 또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일에 대해 경찰의 책임을 강하게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