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보조원은 주사기보다도 못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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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보조원은 주사기보다도 못한가요?”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09.1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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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 강남성심병원 ‘간호보조천사’들 거리로 나선 이유

주사기 유통기한은 3년인데 비정규직 유통기한은 2년
간호보조 파견직 2년의 끝은 ‘정규직 전환’ 아닌 ‘해고’
숙련직원 내치고 또 다른 파견직원으로 인건비 절약(?)
“인건비 아끼려고”… ‘직접고용→간접고용’ 회유 후 해고
 “병원 자금사정 어렵다”더니 새 대형병원 신축에 열 올려
서비스 질 좌우 ‘간호보조’, 2년마다 재교육 ‘바쁘다 바뻐’

[매일일보닷컴] “우리는 주사기보다 못한 사람들인가 봐요. 주사기 유통기한이 3년인데 우리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보다 못한 2년 동안 이용만 당하다 버려져요. 매일같이 주사기를 보는데 그 때마다 씁쓸하죠.”

가톨릭대학교 강남성심병원 비정규직지부 이영미 지부장의 이야기다. 그녀는 2006년 2월께 이 병원 ‘직접고용’ 비정규직 간호보조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2006년 10월, 병원측은 비정규직 간호보조사원들을 인력업체 소속의 파견직으로 전환시켰다. 당시 이들에게는 ‘파견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느냐, 실업자가 되느냐’ 두 가지 길 밖에 없었다. 결국 생계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즉 파견노동자의 길을 선택해야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2년이 지난 2008년 9월, 이들은 또 다시 생계를 걱정해야 될 위기에 내몰려 있다. 병원의 뜻에 따라 직접고용 비정규직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로 한발 물러섰던 강남성심병원 노동자들. 또 다시 물러선다면 이들에게 남는 것은 ‘실업자’라는 꼬리표뿐이다. 이게 바로 ‘간호보조천사’들이 오늘도 피켓과 선전물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는 이유다.

2007년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한 사업장에서 파견직으로 2년 이상 근무하게 될 경우 원청은 이들에 대해 직접고용의 의무를 지게 된다. 얼핏 보기엔 2년만 참으면 같은 노동을 하고도 정규직과 차등된 임금을 받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 근로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사용자는 2년 이내라면 언제든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랜드, 코스콤 등 장기투쟁사업장 원청과 마찬가지로 강남성심병원 역시 법의 허점을 노리고 오는 30일로 파견직으로 전환된 지 만 2년이 되는 2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의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

유통기한 2년 비정규직, 상하기 전에 버려라?

▲ 지난 17일 밤 11시경 병원측이 동원한 용역 20여명이 비정규직지회가 설치한 천막농성장을 강제철거하고 있다. /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제공
지난 17일 오후 2시경,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가톨릭대학교 강남성심병원에서 이영미 지부장을 만났다. 한창 외래 ∙ 입원환자들의 진료로 바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부장은 간호사복이 아닌 편안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이유인즉 “휴무인데 ‘볼일’이 있어 병원에 나오게 됐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그녀가 말한 ‘볼일’이란 바로 강남성심병원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전국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과 앞으로의 투쟁노선에 대한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이 지부장에게 ‘투쟁’ ‘집회’ ‘연대’ 등은 낯설고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실제로 해당병원의 비정규직 노동조합도 설립된 지 지이제 갓 한달이 된 신생 노조다. 그러나 기자에게 자신들의 ‘정당함’을 알리려는 ‘햇병아리 지부장’의 확고한 신념과 열정은 수년간 장기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원직’으로 불리는 이들은 강남성모병원에서 길게는 5년, 짧게는 2년간 약품정리, 의료기구 세척 ∙ 소독, 시트교체, 관장 및 중증 환자의 체위 변경 등 다양한 간호보조업무를 맡아왔다. 현재 해당 병원에서 간호보조업무를 보는 사원은 200여명으로 이중 65명이 파견직이다. 병원측은 그중 오는 30일자로 만 2년이 꼭 채워지는 28명의 파견직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나머지 37명의 파견직 근로자들도 2년 계약만료가 되기 전에 이들처럼 줄줄이 계약해지 당할 것이라는 게 노동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게다가 이번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28명의 ‘간호보조천사’들은 처음부터 강남성심병원에 파견직으로 입사했던 게 아니라는 점에서 노동계의 주장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파견노동자 할래, 실업자 할래”

▲ 지난 17일 밤 11시경 병원측이 동원한 용역 20여명이 비정규직지회가 설치한 천막농성장을 강제철거하고 있다. /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제공
노조에 따르면 간호보조업무를 맡고 있는 파견직 노동자들은 처음에 ‘직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채용됐다. 그러나 2006년 10월, 병원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이들 모두는 파견 노동자로 전환됐다.

이와 관련 이 지부장은 “파견직으로 전환되기 3일 전, 모 인력업체 직원들이 병원을 돌아다니며 ‘병원방침에 따라 10월 1일부터 비정규직 간호보조사원은 파견직으로 전환되니 병원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으면 사직서를 쓰고 우리 회사소속 직원으로 새로 계약서를 써라. 그것도 싫으면 아예 병원을 떠나야한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노동자들의 속과 달리 ‘직접고용 비정규직 대신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채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사용자들에겐 이 같은 계획이 마치 초콜릿의 유혹처럼 달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파견직 노동자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에게 계약해지 통보를 하더라도 소속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원청으로 돌아오는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력 파견업체들간의 가격경쟁을 통해 보다 싼 임금으로 똑같은 노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경제적 이점 또한 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7일 성명서를 통해 “강남성모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정규직이 담당해야 할 업무에 비정규직 고용하기→직접고용한 비정규직을 파견업체에 넘기기→계약만료를 이유로 2년이 넘기 전에 계약해지하기’라는 고용악화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이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는커녕 2년마다 주기적으로 비정규직을 잘라내는 법으로 둔갑한 비정규직보호법의 대표적인 악용사례”라고 비판했다.

‘생명존중’ 한다더니 비용절감에만 급급

노조에 따르면 인건비 감소를 위한 병원측의 ‘몰래 작업’은 지난 2006년 ‘3일전 인력업체 통해 파견사실 알리기’에 이어 이번 계약해지 건에서도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 지부장은 “파견직 전환 때도, 계약해지 때도 병원측에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온 사실은 전혀 없다”며 “지난 8월 해고소문이 돌기 시작해 인사팀 ∙ 병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그 결과 사실로 확인되면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오늘(17일)까지 인사팀, 병원장과 각각 한 차례의 면담이 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라고는 ‘병원 경영이 어려워 직접고용하거나 정규직화에 대한 계획이 없다’ ‘마음은 아프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며 “강남성모병원은 병원이념으로 삼고 있는 생명존중의 ‘가톨릭 정신’보다 비용절감과 돈벌이에 급급해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병원측은 노조와의 면담을 통해 파견직 노동자 해고 이유를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현재 강남성모병원 내 부지에는 내년 5월 개원을 목표로 한 지상 22층, 지하 6층, 1,200병상 규모의 서울성모병원 공사가 한창이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노조 한 관계자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자산으로 건물을 신축하고 병상을 확대하는 것이라면 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새 병원의 건립으로 숙련된 인력이 더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은 고려하지 않은 채 ‘해고’로 대응하는 병원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이동, 침대시트 ∙ 진료차트 ∙ 약물 정리 등은 가장 기본적인 간호사 업무 중 하나로 간호사와 함께 보조를 맞춰 일해야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지부 한 조합원은 “숙련된 파견직 30여명이 한꺼번에 나가고 그 자리가 새 직원으로 채워진다면 의료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보조업무라고는 하지만 모든 업무가 의학용어로 이루어지는 특성상 이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작업기술을 습득하고 간호사와의 작업 호흡을 맞추다보면 최소한 1달에서 2~3달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건비 절감으로 인한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는 환자에게 돌아가고, 이는 결국 병원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병원의 경영악화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게 이 조합원의 주장이다.

“계약해지, 법적으로 문제없다”

▲ 지난 17일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에서 해당병원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들의 정규직전환을 촉구하는 첫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제공
또 다른 조합원은 현재 지어지고 있는 서울성모병원 건물을 볼 때마다 ‘내년 5월이면 저기서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일을 해왔다고 한다. 물론 2년의 파견기간이 끝나 직접고용 노동자가 된다는 한껏 부푼 꿈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이 조합원의 꿈이 단순한 꿈으로 끝날지 현실로 이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강남성심병원측은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기자가 찾아간 같은 날 밤 11시께, 이날 오후 조합원들이 강남성모병원 행정동 앞에 쳐놓은 천막농성장을 용역직원 20여명이 몰려와 강제로 철거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조합원은 용역에 의해 120m를 끌려가 허리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병원측은 이 사태에 대해서도 역시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 “잘 모르겠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와 관련 노조는 “병원 인사팀의 지시에 따라 파견업체가 용역을 고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남성심병원과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계를 건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하고 싶다는 우리의 절박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기서 물러서서 다른 직장으로 간다 하더라도 또 비정규직이다. 2년마다 반복되는 비정규직 악법이 어디에선가는 해결돼야한다”며 강한 투쟁의지를 내비쳤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오는 30일 이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대화와 교섭, 대책회의 가동, 항의투쟁과 여론전 등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이들의 정규직 전환을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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