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이제까지 명시적 규정이 없는 '임의비급여'에 대해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거나 이를 부담하게 한 때'를 해석·적용, 이를 원칙적으로 금지해 왔으나 이번 판결로 '요건'을 갖춘 '임의비급여'의 경우 예외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8일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 "임의비급여와 관련해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며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과징금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 중 '선택진료비 부당이득 징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건강보험제도는 효율성과 의학적 안전성·유효성을 갖춘 의료행위를 요양급여로 제공하고 그 혜택을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공복리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라며 "이 취지에 비춰 임의비급여는 옛 국민건강보험법상 금지한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에 해당, 일반적으로 의료비 급여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다할 의무가 있고 환자도 유효·적절한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의학적 타당성과 불가피성이 있고 환자에 그 내용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한 뒤 동의를 받는 등 요건을 충족한 경우까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예외를 인정하지 않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이 취지 범위 내에서 변경했다.
다만 "입증책임은 요양기관(병원)측에 있다"며 "임의비급여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요양기관 측이 증명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또 '선택진료 포괄위임'에 따라 진료비를 환자에 부담시킨 것과 관련해서는 "환자로부터 선택진료 의사를 위임하겠다는 동의를 받은 뒤 추가적으로 선택진료비를 받은 것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원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반면 김능환·박병대·김용덕 대법관은 "과징금·부당이득환수 처분 요건인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에 대한 증명책임은 처분을 하는 청(복지부, 공단)에 있다"며 "요양기관은 증명의 필요가 있을 뿐 증명책임까지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전수안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병원측과 환자 등은 건강보험의 틀 밖에서 비급여 진료행위와 관련해 사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진료비는 건강보험법의 규율 대상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임의비급여 진료를 한 뒤 비용을 환자측으로부터 받은 행위에 대해 예외 없이 '부당'하다고 봤던 종례 판례를 변경, 요양기관 측이 증명을 다한 경우 예외적으로 부당하지 않다고 볼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사후보고제 도입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고, 건강보험 체계 밖에서의 비급여 진료행위는 원칙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며 "기존 체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의료진이 환자에 대해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판결 직후 성모병원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판결로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지 않던 판례가 변경됐다"며 "의료계에 큰 획을 그은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이어 병원 측에 입증책임을 지운 것과 관련해 "이미 제출된 자료와 의학적 판단, 과징금 등 부과 내용을 하나하나씩 살펴본 뒤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성모병원은 2006년 4~9월 백혈병 등 혈액질환 환자에게 요양급여 비용을 전부 부담시켰다는 이유로 2008년 복지부로부터 과징금 96억9044만원, 공단으로부터 환수금 19억3808만원의 행정처분받자 소를 냈다.
1·2심은 "요양급여기준 등에 위반한 진료행위라도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고, 환자 측에 진료행위를 충분히 설명하고 사전동의를 받아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성모병원의 손을 들어줬으나, 복지부와 공단 측은 "국민건강보험제도 취지와 규정상 '임의비급여'는 허용될 여지가 없다"며 상고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이 사건과 관련해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고, 의학적 임의비급여 허용여부 및 그 기준과 관련해 양측의 의견을 청취했다.
당시 병원 측은 "요양급여 기준대로만 진료할 경우 보편적 진료수준에 그쳐 환자의 생명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한다"며 "안전성과 유효성 문제는 전문가나 협의 연구결과 등을 반영해 결정하도록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의비급여를 허용할 경우 "궁극적으로 건강보험제도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담보하지 않은 지료 또는 약제를 사용하면서 환자의 생명과 실체를 담보로 의사의 진료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요양기관들이 수가가 높은 임의비급여 항목을 환자들에게 권해 수익을 올리려 하고, 결국 건강보험제도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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